초대교회는 외부적으로는 온 백성들에게 칭찬을 받고,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늘어 났으며(행 2:47), 내부적으로는 한마음으로 서로 유무상통하는(행 4:32) 이상적인 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5장에 와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아시다시피 이 부부가 땅을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고 베드로 앞에 가져 왔다는 이유로 두 사람이 즉사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가 굳이 분위기 좋게 잘 나가던 초대교회 이야기 속에 기록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두 부부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과한 심판이 아닌가 생각도 됩니다. 어쨋든지 간에 두 사람이 심판을 받은 직접적인 이유는 성령을 속이고(3절), 거짓말을 했기(5절) 때문인데요. 왜 그들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요? 본문 말씀을 통해서 명시적으로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두 가지로 가정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그들이 변심했을 가능성입니다. 처음에는 은혜 받아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주님께 바치겠다고 결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땅을 팔아 보니 생각보다 값이 꽤 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들은 현실과 타협해서, 마치 그것이 전부인양 사도들 발 앞에 가져간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하나님도 속일 수 있다고 착각했을지 모릅니다. 두번째 가정은 애초에 동기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 바로 직전에 바나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요(행 4:36-37). 바나바가 자신의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는 겁니다. 아마도 이를 본 초대교회 성도들이 바나바를 칭찬했을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를 질투하게 되고, 자신들도 인정받기 위한 목적으로 땅을 팔기로 작정했다는 겁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겠다는 순수한 동기가 아닌, 질투와 경쟁심에 의한 것으로, 결국 교만과 위선으로까지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마음의 동기가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세가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 땅의 교회는 100%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꿈꾸는 교회인 초대교회 조차도 결국 죄성을 지닌 사람의 모임이기에, 불완전한 공동체였다는 겁니다. 둘째, 이 사건이 일종의 하나님의 경고의 본보기가 된다는 것입니다(11절).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나란히 누워 있는 묘지를 상상해 보세요. 묘지는 본래 죽은 자를 위한 것이지만, 시신은 썩어 없어지게 될 뿐입니다. 결국 묘지는 남아 있는 자들을 향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메세지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공동체의 거룩과 성결을 지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의 동기를 주목하시며, 거룩함을 요구하십니다. 내 안에 있는 찌꺼기를 녹여 청결하게 하고, 공동체 안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해야 합니다(사 1:25). 내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우리 마음을 그분께 내어 드립시다. 그리하면, 마음을 연단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모습으로 거룩하게 빚어 나가실 것입니다. – 어성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