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가 메뚜기하고 아침부터 놀다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하루살이야, 벌써 저녁이 되었으니 그만 놀고 내일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루살이가 메뚜기에게 묻습니다. “내일이 뭔데?” 하루살이는 하루만 살기 때문에 ‘내일’을 모릅니다. 하루살이가 죽고 나니 메뚜기가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만난 것이 개구리였습니다. 개구리와 놀다가 가을이 왔습니다. 그러자 개구리가 “메뚜기야, 겨울 지나고 내년에 만나서 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메뚜기가 개구리에게 “내년이 뭐야?” 라고 물었습니다. 개구리가 아무리 내년을 설명해도 메뚜기는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눈이 오고, 얼음이 얼고, 다시 봄이 온다고 말했으나 메뚜기는 통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메뚜기는 ‘내년’을 모릅니다. 1년만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 사회에도 하루살이처럼 오늘 하루, 눈앞의 현실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눈앞의 현실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내일을 모르는 인간 하루살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신앙의 하루살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일에 잠시 동안만 믿음을 가지는 듯하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상이나 희망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믿는 자들은 현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두 눈을 이 속된 세상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돌려야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미래에 있으며 오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에 목표를 두는 삶은, 하루살이 같은 삶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이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라. 아래로 땅을 내려다보라. 하늘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땅은 옷처럼 해어져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살이처럼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내 구원은 영원하고 내 정의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이사야서 51장 6절> 이처럼 성경에서 하루살이는 덧없이 지나가는 짧은 인생과 인생무상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주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