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광야 생활은 성도의 삶에 나타나는 연단 같은 과정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보면 현재의 연단에 대해 많은 부분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연단 중 대체적으로 지나게 되는 상황이 계속 되는 생존에 대한 위협입니다. 도대체 생존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질 않습니다. “생존”이 당장의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생존”이 계속적인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하나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계속 매달리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 잘못된 것 없습니다. 전혀 잘못된 것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매달려야 합니다. 항상 매달려야 합니다. 평상시에도 매달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께 매달리시는 분들 중 왠지 초점이 맞지 않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염려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염려하고 염려 해야할 것을 염려 하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살아남으려면 진중에 거해야만 합니다.(시 105:39~40). 진중에만 만나와 메추라기가 있으며 진중에만 뜨거운 사막의 열기를 식히는 구름 기둥이 있으며 진중에만 차가운 사막의 밤을 따뜻하게 하는 불기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진중에 거하면 의식주는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진중에 있다고 다 생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만 생존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했다가는 정도에 따라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광야 한복판에 있어도 진중에만 있으면 의식주는 다 해결이 됩니다. 의식주는 염려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정말로 염려해야 할 대상은 “계명”입니다.

진중에 있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만 합니다. 계명을 지키면 생존 합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가?”를 염려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는가?”를 염려해야 합니다. 광야 생활 중이십니까? 즉, 연단 중에 계십니까? “생존”이 당장의 염려가 되시고 계속적인 염려가 될 것 입니다. 그러나 “생존”에 대한 염려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로 염려 하셔야 할 대상은 “계명”입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가?”를 염려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는가?”를 염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만 살면 생존 합니다. 그것만이 광야 생활 빨리 끝내는 길입니다.  광야 생활 가운데 생존법칙은 순 종,  순 종, 순 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