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의 숱한 기독교나 천주교 선교 단체가 어렵사리 한국어 성경을 북한에 보냈는데 그걸 보고 내용을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사실 현대 한국어 성경은 1911년 나온[셩경젼서]의 고어 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자어가 너무 많고 백 년 전의 언어 규칙이 남아 있어 글쟁이로 25년을 지낸 저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니까요.

김현식 교수가 평양어 성경 번역에 몸을 바쳐온 건 한국어 성경을 북한 사람들에게 전해도 뜻이 통하지 않는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요한이 전한 기쁜 소식’ 몇 구절을 볼까요 “처음에 말씀이신 분이 계셨다….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다… 그분 안에는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인류의 빛이었다.”요한복음은 같은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빛이라.” 한자어와 옛 말투 투성이인 한국어 성경한테 당황했던 북한 사람들은 김교수의 평양어 성경을 읽으면서 쾌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들은 “반만년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조선의 하나님인 경애하는 수령님을 해와 달이 다하도록 우러러 모셔야 하오”라는 말을 듣고 살았습니다. 수령님을 하나님으로 모셔온 평양인 중 일부는 ‘인류의 빛이 수령님이 아니다’는 평양어 성경의 선언이 충격일 겁니다. 독재자를 공포에 몰아넣는 건 내부의 동요하는 생각들입니다. 평양의 독재자에게 평양어 성경의 선언들은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것으로 믿는 핵무기보다 무서울 수 있습니다. 김현식 교수의 평양어 성경에 영감을 준분은 뜻밖에도 유물론 철학자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였습니다. 황비서는 2003년 김교수가 예일대학 신학과 초빙교수로 갈 때 추천서를 써주면서 “우리 조국이 통일되는 길은 이제 종교적인 방법밖에 남지 않은 것 같소. 예일대에 가서 머리 좋은 교수들과 의논해 보시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끝.

글 : 전 영기(중앙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