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공부 2013년10월25일
하나님의 내버려 두심과 그 심판의 의미
로마서1장24절~32절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루는 어느 성도님이 사무실로 찾아오셨답니다. 얼마 전 남편을 잃은 부인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예수를 믿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췌장암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부인은 다급해졌습니다. 치료도 치료지만, 영혼이라도 구원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던 것입니다. 부인은 시간 나는 대로 예수님을 부르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무슨 체면에 지금 와서 예수님을 부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평생 믿지 않다가 이제 와서 살려달라고 하면 뻔뻔스러운 일이니 입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부인은 계속해서 권면했습니다. 그랬더니 운명하기 직전, 가장 마지막 말로 “예수님!”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부인은 너무 좋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육신적으로는 헤어져 섭섭하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날 기약이 있으니 감사하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찾아와 조의금 전체를 감사헌금으로 드리고 갔습니다.

이러한 일도 귀한 일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도 죽음 직전에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급하면 영혼만이라도 구원시켜야지요, 지옥에 갈 판인데 체면만 따지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실상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 커서 우리의 체면 없음을 초월합니다. 또 먼저 믿는 사람들은 체면이 서서 구원받는 것입니까? 체면 안서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 심판만 안 하면 되는 줄 알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그것이 결정적인 것이지만 현세적 심판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현세적 심판의 한 면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현세적 심판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현세적 심판을 이해하고 현세적 심판을 피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됩시다.

1. 하나님의 심판과 내버려두심을 바울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여기서 먼저 생각해 둘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획일적이 아닙니다. 망하게 하는 심판도 있고 잘되게 하는 심판도 있습니다. 서서히 망하게 하는 심판도 있고 갑자기 망하게 하는 심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꼬집어서 이거다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잘되는 것이 심판일 수 있습니다. 잘 됐기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망하는데도 돈이 필요하고 권력과 힘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의 때는 우리가 모른다는 것입니다. 심판의 때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에 상을 주거나 벌을 주지 않는다고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은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심판은 오랫동안 유보하시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오늘 잘못했다고 내일 당장 벌받는 것 아닙니다. 어떤 때는 5년 후에, 10년 후에 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당대에 받지 않으면 자손이 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이 기적적인 방법으로만 오지 않습니다. 아주 평범하게 이웃을 통해서 오기도 합니다. 자녀를 통해서 오기도 하고 때로는 원수를 통해서 오기도 합니다. 시장의 호경기와 불경기를 통해서 올 수도 있습니다. 주가의 폭등이나 폭락을 통해서 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심판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A라는 사람에게 잘못했는데 B라는 사람을 통하여 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버려두심

하나님의 다양한 심판 중의 하나가 내버려두심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말씀에 내버려두신다는 것이 세 번 나옵니다. 24절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26절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그리고 28절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내어버려 두심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버려두시면 좋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철없는 자녀들은 부모의 간섭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라고 외칩니다. 그래서 끝내는 “네 마음대로 해라”하고 내버려둡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유입니까? 해방된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가롯 유다에게 여러 번 간섭하셨지만 끝내 제 길을 가자 “네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하라”고 내버려두셨습니다. 그것이 가롯유다에게 자유가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를 팔고 후회했습니다. 통회하면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내버려두심은 자유가 아니라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은 사랑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7-8).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징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하나님의 간섭과 장계를 받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계속 고집을 부리고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깨우쳐도 듣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십니다. 나중에는 불의한 데도 형통한 채로 내버려 둘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만사형통인줄 압니다. 자기의 뜻대로 잘 풀리니 아무 문제도 없는 줄로 압니다.

이러할 때 어떤 이들은 오해합니다. 불의한 사람이 만사형통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합니다. 신정론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입니다. 나는 잘 믿으려 하는데도 어려운데 저 불의한 사람이 어떻게 만사형통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신정론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내버려두심을 이해하지 못한 연고로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내버려두심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형통한 채로 내버려두는 것이 곧 심판입니다. 저들은 그 형통함 가운데 영원한 멸망으로 향해 가는 것입니다.

2. 우상 숭배와 성적 타락은 어떻게 같을까요?

하나님이 사람을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두시면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24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여기서 사람을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두신 것하고 우상숭배 사이에 연관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욕은 좋지 않은 욕망이며 향락으로 치닫는 더러운 욕심입니다. 이것은 병적인 욕심이며 정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금지된 향락을 추구합니다. 불법적 향락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향락을 추구하고 불법적 향락을 즐기는 사람도 종교에서 완전히 자유하지 못합니다. 무엇인가는 믿어야 삽니다. 그러나 높은 윤리적 가치관을 요구하는 하나님을 싫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으면 귀찮은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에는 윤리적 결단이 없습니다. 뉘우치고 회개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은 “재수가 없다, 운이 없다” 고 합니다. 액운이 끼었으니 귀신 때문이라느니 하면서 핑계를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그러니까 우상은 섬기기가 편합니다. 어느 무당이 회개하라고 말합니까? 액이 끼었으니 굿하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돈만 주고 굿만 하면 다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런 우상 숭배자들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깨우쳐 주십니다. 그래도 제 갈 길을 가면 내버려두십니다. 진리가 없는 우상숭배에 버려 두십니다. 우상 숭배하면서도 형통하게 내버려두십니다. 그리고 진리가 없는 우상과 함께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게 하십니다.

성적 타락 – 동성연애

또 하나님은 사람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내버려두시어서 성적인 타락에 빠지게 합니다. 심지어는 동성연애자까지 아무 간섭하지 않으시고 버려두십니다. 26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게 받았느니라.”

하나님은 성적타락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빨리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니 거룩하게 유지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부끄러운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무시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저들을 내버려두십니다. 하나님이 벌을 주시지 않는 것도 심판입니다. 무서운 죄를 지어도 버려두시는 것은 심판입니다.

옛날 로마에는 음란죄가 무성했습니다. 쥬비날(Juvenal)은 “로마에서 빈곤이 사라진 후 범람한 것은 온갖 죄와 음란 이었다”고 말하면서 그 시대를 도덕적인 자살의 시대라고 하였습니다. 또 세네카는 “그 시대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 일이냐고 묻지 않고 그 값이 얼마냐고 물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쥬비날(Juvenal)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이베리나에게 한 남편으로 충분할까? 는 하나만 가지고 살라는 것이 더욱 쉬우리라.” 어떤 부인은 5년 동안 8명의 남편을 바꿨습니다. 클라디우스 황제의 아내 아그리파는 밤에는 쾌락을 찾아 창녀굴에 가서 일했다고 합니다.

오늘날도 심각합니다. 킨제이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의 동성연애자는 성인 남녀의 16%나 된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동성연애를 허용했다가 지탄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올해 미국 감리교회 총회에서는 동성결혼 허용에 대한 의제가 부결되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 총회 대표와 러시아 총회 대표들이 반대하여 부결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숨어서 했는데 이제는 내놓고 투쟁합니다. 기독교계 안에서도 그런 사람들끼리 교단을 만들었습니다. 동성연애자를 목사안수까지 해줍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상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회개해야 삽니다. 하나님이 간섭하실 때 깨우쳐야 합니다. 아무 일 없다고 방심하지 마십시오. 아무 일 없는 것도 심판입니다.

3.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것의 결과는?

28절을 보십시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상실한 마음은 현대적 용어로 인간성 파괴입니다. 생각하는 것, 계획하는 것, 느끼는 것이 정상이 아닙니다. 옳은 것을 옳게 느끼지 못합니다. 즐거운 것을 즐겨야 하는데 못된 것을 즐깁니다. 잘못된 것을 즐기면서도 잘못된 줄로 알지 못합니다. 마음에 하나님 모시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상실한 마음에 내버려두십니다. 병든 마음으로 계속 살게 하십니다. 그러다가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상실한 마음에 버려두시면 결과로 여러 가지 죄악이 따라옵니다. 첫째 열매는 불의입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모르게 됩니다. 그 다음 열매는 추악입니다. 이것은 남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요구입니다. 탐욕도 그 열매입니다. 탐욕은 불법적인 욕심입니다. 법을 어겨가면서도 욕심을 채우는 것입니다. 악의는 동기 자체가 악한 것입니다. 생각부터가 악한 것을 말합니다. 또 시기, 살인, 분쟁, 사기도 무서운 죄입니다.

또 중시한 것들이 있습니다.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을 떠난 삶의 양식입니다. 좋은 말을 하십시오. 좋지 못한 말로 수군거리고 거짓으로 수군거리는 것 모두 죄입니다. 그밖에도 비방하는 자, 교만한 자, 자랑하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 배역하는 자,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들도 무서운 죄를 짓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실한 마음으로 이러한 죄 가운데 살도록 내버려두십니다. 이렇게 살게 하시는 것이 심판입니다. 그렇게 살면서 스스로도 떳떳치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조종거리가 되게 내버려두십니다. 그러다가 영원한 심판을 받습니다.

밀알가족 여러분! 하나님께서 깨우치실 때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징계를 달게 받고 하나님께 바로 서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고집을 피우면 내버려두십니다. 우상숭배해도 내버려두십니다. 성적으로 타락해도 내버려두십니다. 온갖 죄를 다 지어도 그냥 놔두십니다. 이것이 그 죄와 함께 영원한 멸망을 받도록 놔두시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으로 이를 깨닫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