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J. 매허니는 율법주의를 ‘접시 돌리기’로 비유합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율법주의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성경 읽기의 접시를 돌리고, 기도의 접시를 돌리고, 전도의 접시를 돌리고, 전도의 접시를 돌리고, 구제의 접시를 돌립니다. 온갖 접시를 다 돌립니다. 그런데 저쪽에 있는 접시가 흔들흔들 떨어질 것 같습니다. 재빨리 달려가 그 접시를 다시 돌립니다. 그러자 이쪽에 있는 접시가 또 흔들거립니다. 이처럼 모든 접시(율법)를 항상 돌리려고 하는 것은 엄격한 율법주의입니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피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혹시 접시가 깨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와 불안이 가시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율법을 좀 부드럽게 가다듬으려는 시도가 일어납니다. 어차피 ‘모든’ 접시를 ‘항상’ 돌릴 수는 없으니가 남들보다 더 많이 돌리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많은 접시를 돌리겠다며 열심을 냅니다. 모든 접시를 돌려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 내자, 그저 옆 사람보다 한두 개만 더 돌려도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모든 접시를 돌릴 수 없으니, 특별한 접시를 돌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큰 접시를 가져와서 돌립니다. 남들에게 없는 접시입니다. 신유의 능력 접시, 귀신을 쫓는 접시 등을 돌립니다. 남들에게 없는 은사를 발휘하는 접시를 휭휭 돌리면서 이것이 의와 공도를 행하는 삶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접시를 돌리는 것은 피곤할 수밖에 없고, 접시가 깨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와 불안이 가시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결국 접시는 언젠가 회전력을 잃게 마련이고, 바닥에 떨어져 깨지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주의입니다. – 이상훈, 「세례, 예식에서 복음으로」 中

혹시 이번 사순절에 내가 결단한 것들이 율법주의적인 모습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엡 6:17) 앞에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내어 드릴 때, 우리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매일 말씀 앞에 서십시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십시오. 그 뜻에 순종할 때 비로서 변화된 우리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