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생각의 위대함을 표현합니다.
처칠은 히틀러의 공세로 영국인이 두려움에 빠졌을 때 “대포와 요새와 무장병력에 둘러싸여 뽐내는 독재자들, 그들의 가슴속엔 두려움이 있다”는 연설로 용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외부에서 빗발치는 언어들과 내부에서 동요하는 생각들이 독재자들을 공포에 몰아넣는다.”는 겁니다. 자유의 언어와 저항의 생각이 독재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 정신을 만들어낸다는 게 처칠의 믿음이었죠.
핵무기를 뽐내는 김정은의 북한 사회에 평양어로 번역된 성경이 전파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성경 속의 자유해방 정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성경의 유일신 사상에 황금 송아지 같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우상체제가 동요하지 않을까요?

평양어성경이 보름 전 워싱턴에서 나왔습니다. 평양사범대학에서 38년간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다 서울로 탈출한 뒤 미국에 간 김 현식 조지메이슨대학 교수가 번역자입니다. 평양어로 번역된 성경은 얼마나 쉽고 솔직한지! 슬쩍 한 번만 들여다봐도 한여름 빙수 맛처럼 속이 시원합니다. 우선 한국어에선 성스러운 경전이란 뜻의 성경이 평양어에선 ‘하나님의 약속’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구약과 신약은 각각 ‘예수 전편’ 과 ‘예수 후편’으로 불리게 됐고 한국어 성경의 요한복음은 평양어 성경에선 ‘요한이 전한 기쁜 소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약속, 기쁨, 소식같이 개인적 느낌을 주는 희망의 언어들이 전면에 나선 게 평양어 성경의 특징입니다. 솔직하고 경쾌하죠. 북한에선 50년 전 김일성의 언어혁명에 따라 사투리 사용이 금지되고, 말과 글에서 어려운 한자어와 외래어가 없어졌습니다. 평양 표준어, 즉 문화어가 탄생한 거죠. 언어학자 김 현식 교수는 평양 표준어를 만든 분입니다. 그런 분이 처음 성경을 보면서 “신약을 새로 나온 약으로 알고, 창세기를 창끝의 세기로 알았다”고 한 건 무리가 아닙니다. (다음 주 계속)

글 : 전 영기(중앙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