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공부 2013년11월1일

하나님의 심판
로마서2장1절~18절

「신경긴장에서의 해방」이라는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핀크는 신경쇠약의 원인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신경쇠약을 호소해오는 수많은 사례들을 비교 조사하였습니다. 그는 치료법을 찾아내기 위하여 신경 쇠약 자들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런데 극도의 긴장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습관이 무엇인지를 찾아냈습니다. 그들은 습관적으로 남의 결점을 찾고 자기 둘레의 사람들과 사물을 비판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판하는 버릇이 신경쇠약과 정신적 분열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발견해 냈습니다.

남의 비판하는 일이 재미는 있으나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남을 판단하면 곧 자기가 판단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늘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판하는 일이 나쁜 줄 모르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쁜 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비판하는 것이 나쁜 일일 줄 알고 하던 모르고 하던 그것은 나쁜 일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남을 비판하는 사람 치고 칭찬 받는 사람은 드뭅니다. 좋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나 잘난 척 하고 나서서 비판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욕을 먹습니다. 처음에는 왜 저런 사람을 그냥 두실까 하고 의아해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두고 보니 하나님의 심판은 있었습니다. 지난주 속회공부에서 내버려두시는 것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공부 했듯이 계속 비판하게 내버려두시는 것이 심판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계속 비판하다가 형편없는 사람으로 평가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에서 바울은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우리가 남을 판단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모두가 똑같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진리대로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판단은 유보하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고 남을 판단하는 것은 더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1. 남을 비판하기 전 우리 모든 사람은 죄인이란 말은?

로마서의 주제 중 하나가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이방인만 죄인이 아니라 선택받은 유대인도 죄인입니다. 불신자만 죄인이 아니라 우리 믿는 사람들도 죄인입니다. 구원받았다고 의인이 되지 않습니다. 의롭다고 여김 받는 것도 황송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들을 용서받은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원죄의 죄 성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또한 죄를 짓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남을 판단하면 곧 자신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릇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혀끝으로 남을 찌를 때 곧 자신을 찌르는 것입니다. 옛말에 “네가 한 손가락으로 남의 죄를 지적할 때 나머지 세 손가락은 네 죄를 가리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은 비교적 착하고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심판 받아야 할 죄인들인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은 죄인입니다. 오히려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더 큰 죄를 짓고 있습니다. 즉 교만과 판단이라는 더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까? 저들의 교만과 남을 판단하는 것 때문 이였습니다. 세리보다 못해서 책망하신 것 아닙니다. 실제로 훌륭한 점이 많습니다. 율법을 연구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보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똑같이 심판 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저들은 우월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심하게 판단했습니다. 그런 태도가 주님 앞에서 큰 죄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남을 판단하는 것은 자신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것은 죄 위에 죄를 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핑계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판단하는 일을 즐겼습니다. 이제라도 두려운 마음으로 판단하기를 그쳐야 하겠습니다. 현명하게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 어떻게 하나님은 의로운 판단을 하실 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든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바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에 맡기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진리대로”라는 말씀은 공정하여 편파가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5절의 의로우신 판단과 11절의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대로 판단하십니다.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하나님의 판단만이 정확합니다. 우리의 판단은 치우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자선사업가 하나쯤 도둑놈으로 만드는 것 어렵지 않습니다. 성자 하나 사기꾼 만드는 것도 식은 죽 먹는 것처럼 쉽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도둑놈도 만들고 사기꾼도 만듭니다. 제멋대로 의인도 만들도 죄인도 만들어 냅니다. 추켜세웠다가 깔아뭉갰다가 마음대로입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피 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은 누구나 피할 수 없습니다. 남을 판다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은 의로운 줄 알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는 없습니다.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남을 판단하기 전에 자신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남을 판단하듯이 하나님은 나를 판단하십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판단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십시오.

그러나 개중에는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문제가 없다”, “나는 벌 받을 짓을 하지 않았다”고 외칩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이 사실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벌 받을 짓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유보되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처럼 즉각, 즉각 심판하신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판단을 유보하시고 오래 참으십니다.

4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하나님은 인자하심이 풍성하십니다. 하나님은 용납하심이 풍성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금방 벌을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며 오래 참으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심판이 아니라 복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벌을 받지 않고 살고 있는 것은 죄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려고 한다면 당장이라도 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오해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멸시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눈은 무서워하면서도 하나님은 눈은 의식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용서를 가볍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의례히 용서하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이것도 무서운 생각입니다. 여러분! 용서하기가 쉽던가요? 오래 참기가 쉽습니까? 뼈를 깎는 고통으로 참고 용서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오래 참고 용서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원수로 갚지 마시기 바랍니다. 심판을 유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시다.

진노를 쌓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유보되는 동안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심판이 유보된다고 모든 벌을 면제받은 것이 아닙니다. 심판이 유보되는 동안 우리에게 진노가 쌓이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다만 네 고집과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한 진노를 네게 쌓는 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심판이 없는 동안에도 회개하십시오. 빨리 빨리 깨닫고 돌아오십시오. 쓸데없는 고집은 진노를 쌓는 것입니다. 매를 맞아야만 깨닫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평안을 주실 때에도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매를 맞아야만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사람은 매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매 맞기 전에라도 스스로 돌아보고 회개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심판이 없더라도 스스로 자신을 성찰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남을 판단할 새가 없습니다. 남의 잘못 지적할 새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 돌아보기도 바쁜데 남에게 눈을 돌립니까? 자기 자신을 성찰하지 않으니까 시간이 남아서 남을 돌아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남을 판단할 시간이 있으면 자신을 성찰하십시오.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을 성찰하십시오. 성경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옛 이스라엘이 받은 심판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거울이 됩니다. 거울을 보는 심정으로 말씀을 읽으십시오.

또 말씀을 듣는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계속 듣는 가운데 깨달아지고 믿음이 성장합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 심령골수를 쪼개는 성령의 검입니다. 쪼개질 때는 아프지만 회개하면 진노를 피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깨달아지는 대로 회개합시다. 말씀을 전하는 이도 사심 갖고 전하면 안 되지만 듣는 이도 사심 갖고 들으면 안 됩니다. 성경 말씀을 비판하는 사람은 수술하는 의사보고 왜 배 쨌느냐고 항의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평안할 때 기도하며 성경 읽으며 말씀 들으며 자신을 성찰하고 깨달아지는 대로 회개하십시오. 반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멸시하고 오래 참으심을 멸시하여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받을 진노를 쌓는 것입니다. 또 매를 맞아야만 회개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입니다.

비판하지 말라

이제 결론적으로 말씀드립니다. 남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더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고민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판단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판단만이 정확하고 의롭습니다.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세우는 말을 하십시오. 헐어 내리는 말을 하지 말고 살리는 말을 하십시오. 판단의 명수라고 생각하지만 남을 죽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워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입에서는 모름지기 살리는 말이 쏟아져야 합니다. 말 한마디가 위력이 있습니다. 특별히 죽이는 말은 더욱 위력이 있습니다. 죽이는 말은 살리는 말보다 네 배의 위력이 있습니다. 죽이는 말 한마디는 살리는 말 네 마디를 해야 상쇄됩니다. 살리는 말로 건강한 삶을 세워갑시다. 존중과 격려의 말로 건강한 인격을 살려내고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