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0편은 아삽이 쓴 시편으로 쉬운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예배”라는 부제(title)가 붙여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제사에 열심이였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50편에서 주님은 한결같이 제물에 관심이 없다고 하십니다. 수소의 고기나 염소의 피가 필요 없다는 겁니다(13절). 급기야 시편 50편 후반부로 갈수록 하나님의 분노가 거세집니다. 열심히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라고 하시며, 그들을 찢어 버리겠다고 책망하십니다(22절). 뭐가 문제였습니까? 바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23절).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감사의 제사, 감사의 삶입니다. 즉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살전 5:18). 어떻게 이런 감사의 삶이 가능하겠습니까?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의 메사추세츠주의 플리머스(Plymouth)에 도착했던 청교도 순례자(Puritan pilgrim)들이 맨 처음 세운 것이 교회고, 그 다음으로 학교, 맨 마지막에 자기 집을 세웠다고 하는데요. 그들이 세운 교회 현판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Think and Thank God”(생각하라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시편 50편 22-23절 말씀도 “이를 생각하라”(22절), 그리고 감사하라(23절)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성경 중에 “감사”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된 곳이 시편 136편인데요. 1절부터 마지막 26절까지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구절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즉, 과거 창조 이래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이켜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처럼 생각하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 우리는 내가 가진 것(건강, 물질 등)을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상대방과의 비교를 통한 상대적 감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감사의 근거를 어디에 두어야 하겠습니까? 하박국 3장 17-18절에 기록된 하박국의 고백을 주목해 보세요. 하박국은 감사의 근거를 무화과나무가 얼마나 무성한지, 포도나무의 열매가 얼마나 맺혔는지, 감람나무에 소출이 얼마나 되는지, 밭에 먹을 것이 얼마나 있는지, 우리에 양이 몇 마리가 있는지, 외양간에 소가 몇 마리가 있는지, 이런 것들에 두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고 고백하면서, 감사의 근거를 구원의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구원의 하나님, 그분이 베푸신 은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 어성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