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 후 계몽사의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우리 지부에는 고속 승진한 데다 수입도 평사원의 10배인 40대 초반의 부장님이 계셨다. 하루는 그분의 비법이 궁금해 부장님을 따라나섰다. 부장님은 한 큰 집 대문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안주인이 문을 열어 주자마자 잽싸게 현관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사모님,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자제분 문제입니다.” 거실에 앉자마자 부장님의 능란한 화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존 듀이의 교육철학이 어쩌고저쩌고하며 서양 철학사를 훑어 내리자 소위 고등교육을 받았을 안주인은 자기도 모르게 집중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안 넘어가자 부장님은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안주인 앞에 무릎을 꿇으며 호소했다. 그 모습은 애절하기까지 했다. 그날 이런 식으로 세 집을 방문해 모두 여덟 질의 책을 판매했다.

부장님의 판매 전략은 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책을 팔겠다는 일념으로 무릎까지 꿇는 부장님을 떠올리며 그날 밤 잠을 설쳤다. ‘나는 무엇을 위해 책을 팔고 있는가?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종이 되겠다고 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복음이 동화책보다 값어치가 없단 말인가?’

다음날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버스에 탔다. ‘이제부터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자!’ 하지만 마음뿐 좀처럼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망설이다 보니 벌써 다음 정거장이었다. 부장님을 떠올렸다. ‘동화책을 팔기 위해 마흔이 넘은 남자가 무릎까지 꿇는데, 이 펄펄 끓는 복음을 들고 왜 예수 믿으라고 사정하지 못하는가!’ 순간 부끄러움이 사라졌다. 목소리에 힘이 실리며 말이 터졌다. 내 간증으로 시작해 차근차근 복음을 증거했다.

- 유해석, 「높여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