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눅 18:41).
당신을 번민하게 할 뿐 아니라 당신 때문에 남들이 번민하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언제나 당신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앞서 가는 자들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저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눅 18:31). 예수님과 얼굴과 얼굴로 직접 뵐 때까지 난감한 문제 속에서 계속 외치십시오. 상식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가 처한 어쩔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대해 주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실 때, 주님은 상식틀에서 벗어나 초월적인 능력 안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예전에 주님께 부탁할 영역을 제한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지금 주님을 제한하려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나는 언제나 그 부분에서 실패했지. 앞으로도 계속 그 자리에서 실패할 거야.” 결국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 이 일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야.”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주께 부탁해야 하는 일입니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실제적인 번민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게 불가능한 일을 능히 해내실 것입니다.
소경이었던 사람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불가능한 일은 주님과 완벽하게 일체가 되어 옛 생명의 흔적을 하나도 남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 일을 주께 구하면 주께서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당신이,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라고 믿는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믿음이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내용만을 믿기보다 주님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내용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절대로 믿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기만 하면 주님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불가능한 일을 해내실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은 마음의 완고함과 어리석음을 통해 옵니다. 우리는 믿지 않으려 하고, 쓸모없는 것들을 잘라내는 대신에 계속 걱정하기를 좋아합니다.
- 오스왈드 챔버스(Oswald Chambers), 「주님은 나의 최고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