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방송국에서 카메라를 멘 사람이 와서 급히 사장을 찾았다.
우리 온천 좀 소개해 달라는 편지를 보낸 것을 깜빡 잊고 있던 나는 순간 긴장했다.
“편지 보내셨죠? 마침 무주 쪽으로 취재를 나가는데 사장님의 절절한 편지 내용이 마음에 걸려 일행들과 잠깐 들렀습니다.”
그들은 원래 이곳에 취재하러 온 것이 아니니 간단하게 촬영만 해뒀다가 나중에 검토한 뒤 내보내겠다며 온천의 남탕 안에 들어가 찍을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한다고 했다.
그 말에 부리나케 직원들을 준비시켰다. 그들은 주변 정경을 촬영하더니 이어 목욕탕 수질의 특징과 효능, 앞으로의 개발 계획 등을 짧게 물었다. 한참 뒤 촬영이 끝나자 나는 방송국 직원들을 어떻게 접대해야 좋을지 몰라 고민이 되었다.
그 때 내 마음을 눈치 챈 우리 직원 하나가 슬그머니 흰 봉투 하나를 내 뒷주머니에 집어넣어 주었다. 전달하라는 뜻이 분명한데, 전달을 해도 되는 건지 또 어떻게 전달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여졌다. 그들은 바쁜 듯이 작별인사를 하고 급히 창에 올랐다.
그들이 차에 시동을 거는 걸 보고 나는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어색하게 차창으로 넘겨주었다. 그러자 그들의 표정이 갑자기 험악해지더니 대뜸 소리를 질렀다. “이러시면 우리 이 필름 그냥 버립니다. 우리 화나게 하지 마세요.” 그들은 내게 편지를 가짜로 썼느냐며 화난 듯 소리를 질렀는데 그냥 해보는 말 같지 않았다.
나는 얼른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들은 이런 대접을 받을 때가 가장 서운합니다. 사과하시니 됐습니다. 그럼 성업하십시오.” 하더니 하얀 먼지를 일으키며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손에 들린 봉투가 나를 몹시 부끄럽게 했다.
[그래도 나는 죽지 않는다]. 김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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