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게 십자가를 짊어질 방법은 없다. 십자가는 어디로 메나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고난은 예수님을 제대로 따르지 못한 사람에게나 찾아온다고 믿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따르면 만사가 순조롭게 풀려야 정상이 아닌가? 고난이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증거라는 쓰레기 신학이 교계에 만연해 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하는 것은 때로는 참을 수 없으리만치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감내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요즘 나를 자꾸만 일깨우는 질문이 하나 있다. “아무런 고난과 희생도 없는데 과연 내가 십자가를 제대로 짊어지고 있는 건가?” 예수님을 따르다가 뭔가를 잃은 적이 있는가? 예수님으로 인해 관계가 깨진 적이 있는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승진을 포기한 적이 있는가? 예수님 때문에 휴가를 반납한 적이 있는가? 믿음으로 인해 조롱을 받은 적이 있는가? 꼭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복음을 위해 한 끼를 굶었던 적이 있는가? 아무것도 잃은 게 없다면 과연 진정으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면서 답해 보라. 예수님 때문에 뭔가를 희생한 적이 있는가? 희생이 없었다면, 최소한 약간의 불편함이라도 겪지 않았다면,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십자가는 무엇보다도 죽음을 의미했다.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의 운명은 더없이 확실하다. 사형수를 ‘걷고 있으나 죽은 사람(Dead man walking)’이라고 하는데 십자가를 짊어진 제자에게 딱 맞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당시 가장 혐오스럽고 부끄러운 심벌을 지고서 우리를 향해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거든 이 십자가를 지라.” 예수님은 우리를 죽음으로 초대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신에 대해 죽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래서 제자는 죽음을 결심한 사람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제자의 조건을 내거셨을 때 얼마나 어색한 긴장이 흘렀을까? 실제로 오늘날 많은 교회가 너무 부담스럽고 치욕스럽다는 이유로 십자가의 메시지를 내던졌다. 그 결과, 제자를 자처하지만 십자가는 짊어지지 않는 팬이 교회를 가득 메우고 있다.
- 카일 이이들먼(Kyle Idleman), 『팬인가, 제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