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영국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에게 포위당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1년 가까이 영국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지만, 더 이상 원병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항복을 하게 되었고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는 항복사절단이 왔습니다.

그 때 점령자가 제시한 항복조건은 누군가 그동안 반항의 책임을 진다면 모든 칼레 시민의 생명을 보장한다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도시에서 가장 명망이 높던 대표적인 시민 대표를 골라 목에 밧줄을 묶은 다음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영국군 진영으로 가서 도시의 열쇠를 건넨 후 목을 매 처형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광장에 모여 소식을 전해들은 칼레의 시민들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누가 죽을 것인가?

다 살고 싶은데… 참으로 어렵고 힘든 문제였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누가대신 죽을 사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때 천천히 일어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 여섯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되겠소.”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드 생피에르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다음에 뒤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 부유한 귀족들 다섯 사람이 교수형을 자처하였습니다.그렇게 여섯 명의 자원자들이 칼레시민을 구하기위해서 목에 밧줄을 걸고 무거운 몸으로 교수형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처형 소에서 목을 매려던 순간, 당시 임신 중이던 영국 왕 Edward 3세 여왕의 마음에 감동이 일어났습니다. 왕비는 이정도 했으면 됐으니 살려주라고 간청했습니다. 에드워드 3세 왕은 그 시민들을 살려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로댕이 용감하게 자원한 6명의 칼레시 인질들을 대가다운 솜씨로 표현하여 10년에 걸쳐 ‘칼레시민’ 동상을 조각 했고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작품이 지금도 칼레시 시청 앞에 세워져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여전히 감동으로 전해지는 ‘노블리스 오블리즈’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블리스 오블리즈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죽어야할 사람들 속에 끼어있지도 않고, 아무 죄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 죽으셨다는 이야기가 2000년을 넘게 감동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선지자 이사야는 53:4-5절에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