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공부 2013년6월28일

 

바울을 죽이려는 간계

사도행전23장12절~20절

 

바울을 암살하기 위한 결사대가 만들어진 것과, 그 진행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날 바울을 심문하기 위한 산헤드린 공회는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다툼 속에 그냥 끝나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은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바울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암살하기 위한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들은 일단 바울만 없애면 더 이상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전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그런 생각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고, 사도들을 예루살렘에서 몰아냈습니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12-15) 바울을 죽이기 위해 40명의 결사대가 조직되었습니다. 이들은 맹세했습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자! 만일 이들이 이 맹세를 지켰다면 40명은 다 굶어 죽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 후에도 10년도 더 살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들의 암살 음모는 범 유대인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전날 공회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다퉜지만 바울을 죽이는 일에는 다시 야합했습니다. 예수님 때도 그랬습니다. 서로 티격태격 하면서도 누구를 죽이고 제거하는 일에는 야합했습니다. 공회는 그 중심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바울 암살을 방조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공회의 이름으로 바울을 다시 심문하겠다는 공문을 천부장에게 보내도록 했습니다. 바울을 공회로 이송하는 도중에 암살대가 매복했다가 바울을 공격하여 죽이자는 계획입니다.

이런 암살 계획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바울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40명의 결사대가 나섰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한 사람을 죽이려고 40명씩이나 나설 필요가 있는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알면 이해가 갑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입니다. 로마 시민권자가 암살당하면 일이 복잡해집니다. 만일 바울의 신상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천부장은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부장은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바울을 호송하기 위해 동원된 군사가 무려 470명이나 됩니다. 바울을 죽이기 위한 결사대가 40명이라 해도, 잘못하면 중무장한 로마 군병들에게 모조리 죽임을 당할 수 도 있었습니다. 유대인 결사대가 바울을 죽이기로 한 것은 그만큼 위험한 발상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중대한 사건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바울의 생명을 담보로 팽팽한 대결이 벌어졌습니다.

 

 

1.바울을 죽이려는 악인들의 비밀이 어떻게 탄로 났습니까?

 

그러나 바울의 암살 계획은 탄로가 났습니다. 이 비밀 정보를 빼낸 사람은 바로 바울의 생질입니다.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16) 바울의 생질이란 즉 바울의 누이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바울 집안 식구에 대한 언급은 성경에 거의 없습니다. 이곳이 유일합니다. 바울의 생질이 예루살렘에 나타난 것에 대해서 몇 가지 추측이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의 누이가 예루살렘으로 시집을 와서 살았다는 추측입니다. 본래 바울 집안은 길리기아의 다소에 거주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부친이 자기 딸을 본국 예루살렘에 있는 바리새인에게 시집보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둘째로, 바울의 누이가 자기 아들을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보냈을 가능성입니다. 바울 역시 다소 출신이지만 예루살렘에 와서 가말리엘의 문하생이 되었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바울의 생질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가까이 지냈고, 유대 사회 중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바울의 생질이 예수를 믿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결정적인 순간에 바울을 살리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울의 생질이 바울에게 암살 계획을 알리자, 바울은 한 백부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백부장은 다시 천부장에게로 바울의 생질을 안내했습니다.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17-18) 천부장은 바울을 찾아온 젊은이를 내실로 불러들였습니다. 뭔가 중요한 내용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천부장이 그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당신은 저희 청함을 좇지 마옵소서 저희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매,”(19-21) 천부장은 깜짝 놀랐습니다. 만일 바울의 신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천부장은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긴장하여 바울을 지키기 위한 작전에 돌입합니다.

바울의 생명이 위험할수록 천부장은 필사적으로 바울을 보호합니다. 상당히 아이러니 한 일입니다. 동족인 유대인들은 악착같이 바울을 죽이려 하고, 이방인인 천부장은 악착같이 바울을 지킵니다. 천부장이 바울에게 무슨 이해상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친척도 아니고 혈육도 아닙니다. 바울을 잘 보호했다고 상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열심히 지켜줍니다. 결과적으로 바울의 안전은 최상급으로 보장되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로마 군병들이 지켜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사람은 어떤 위험이 다가와도 안전합니다. 하나님이 철저히 지켜주십니다.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 40명의 결사대가 조직되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으로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밀도 바울 앞에 다 들통이 났습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 생명의 위협을 받는 분들이 계십니까? 안심하세요.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어떤 종류의 생명 위협을 받고 계십니까? 육신의 생명입니까? 명예가 위협받습니까? 물질적인 위협을 받습니까? 어떤 종류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모든 생명을 가장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할렐루야!

 

2.바울을 보호 하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은?

 

천부장은 바울의 암살 계획을 듣자마자 바울을 당장 안전한 곳으로 옮깁니다. 바울이 현재 있는 안토니아 요새도 물론 안전하긴 합니다. 로마 군병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부장은 그날 밤중에 바울을 가이사라로 이송합니다. 천부장이 이렇게 한 것은 자신의 책임 소재 때문입니다. 자신이 바울을 데리고 있다가 무슨 일을 당하면 그 책임을 몽땅 뒤집어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총독 관저가 있는 가이사라로 보내서 자신의 짐을 털어버리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천부장의 바울 호송 작전은 여러 면에서 특별했습니다. 본문을 보세요.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22-24) 이 말씀을 보면 바울을 호송한 것이 왜 특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호송 시간입니다. 밤 3시라고 했는데 요즘 시간으로 환산하면 저녁 9시입니다. 캄캄한 밤중에 바울을 호송한 것은 그만큼 긴급하게, 비밀리에 옮기겠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호송하는 군병들의 규모입니다. 보병이 200명, 마병이 70명, 창군이 200명입니다. 도합 470명이나 됩니다. 당시에 도적 떼나 폭도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상당한 군대가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죄수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병력이 동원된 것은 특별한 일입니다. 이런 규모의 병력을 빼내면 안토니아 요새는 누가 지킵니까? 당시 총독부나, 예루살렘에 주둔하는 로마군 병력은 전투를 위한 병력 외에도, 여유 병력이 일천 명 이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천부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여유 병력을 바울 호송에 투입했습니다. 셋째로, 바울의 이송 방법입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말이나 노새 같은 짐승에 태워 호송하게 했습니다. 보통 죄수를 그런 식으로 호송하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그만큼 특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또한 한 밤중에 이동했고, 신속히 이동하기 위해서 짐승에 태웠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는 약 100km나 됩니다. 이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틀 이상이 소요되었습니다.

바울의 호송은 이틀이 걸렸습니다.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이튿날 마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문으로 돌아가니라.”(행23:31-32) 예루살렘에서 안드바드리까지는 당일 밤에 이동했습니다. 안디바드리는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의 중간 지점에 있는 도시입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서북쪽으로 약 40km 지점이고, 가이사랴까지는 약 60km 이상 더 가야 되는 곳입니다. 안디바드리란 이름은 헤롯 대왕이 이 도시를 건설하고 자신의 아버지인 안티파테르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안디바드리까지는 험한 산길입니다. 그래서 470명의 군대로 호송을 했습니다. 그러나 안디바드리에서 가이사랴까지는 평지 길입니다. 그래서 보병과 창군은 다음 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마병 70명으로 가이사랴까지 바울을 호송했습니다.

한 밤중에 바울이 간 길은 바울의 험한 인생길을 상징합니다. 어둠은 세상의 위험을 상징합니다. 적들이 생명을 노립니다. 언제 공격해 올지 모릅니다. 사람의 위험, 짐승의 위험, 질병의 위험, 불의의 사고의 위험, 천재지변의 위험, 전쟁의 위험, 온갖 위험이 도사린 곳이 인생길입니다. 그러나 안심하세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어떻게 인도하실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무수히 많은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로마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로마로 갈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떤 방법으로 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하나님 이 결정하셨습니다. 어떤 주석가는 이 부분을 해석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제한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대로 따라만 가라! 우리는 종종 어떤 계획을 세우고 방법까지 세워 놓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고 걱정하고 안달합니다. 왜 일이 이렇게 틀어졌을까? 하나님의 은혜를 내 생각으로 제한하지 마세요. 하나님 방법대로 따라가세요. 하나님의 방법은 너무나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려고 했는데 왜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죄수의 신세가 됐습니까? 죄수가 되었다고 로마로 가는 길이 막혔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죄수인 바울을 자유인인 바울보다 훨씬 더 안전하게 로마로 보내셨습니다. 바울이 자유롭게 로마로 갔다면 얼마나 많은 동행자들이 있었겠습니까? 몇 명의 사람이 있을까 말까 했을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죄수로서 로마로 가는 바람에 수 백 명의 로마 군병들의 호위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 인생길을 인도하시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한 번 맡겨보시기 바랍니다.

 

 

3.바울이 겪는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천부장은 바울을 가이사랴 총독부로 보내면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 내용이 본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기록자인 누가는 어떻게 이 편지 내용을 입수했을까? 아마 바울이 심문받는 내내 법정 방청을 하면서 내용을 청취했을 겁니다. 편지 내용은 이렇습니다.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에게 문안하노이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송사하는지 알고자 하여 저희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게 하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송사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를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25-30)

편지의 수신자는 벨릭스 총독입니다. 벨릭스는 유대 땅에 부임했던 제11대 총독입니다. 재임 시기는 주후 52년부터 58년까지 약 6년입니다. 벨릭스는 노예 출신으로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모친인 안토니아에 의해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안토니우스 벨릭스로 불렀습니다. 벨릭스는 세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손녀였고, 셋째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딸인 드루실라였습니다. 그의 형제 팔라스 역시 노예였다가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에 자유인이 되었고, 후일 네로 황제의 총신이 되었습니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벨릭스에 대해서 이런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는 잔인하고 음탕하며 노예의 정신을 가지고 국왕의 대리권을 행사한 자였다!”

편지 내용을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로마 시민인 바울을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죽게 된 상황에서 군대를 동원하여 구해냈습니다.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아보니 단지 종교 문제일 뿐, 죽이거나 결박할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이 사람을 당신께 보내는 이유는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 하고, 송사도 있으니 당신이 심문해 보고 알아서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천부장은 자신이 바울을 보호하려 했다는 점은 부각시키면서도, 자신이 바울을 한 때 붙잡아 때리려 한 것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천부장이 바울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변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로 벨릭스 총독이 비록 탐관오리였지만 바울에 대해서는 좋은 대접을 하게 됩니다. 바울에게 자유를 주고, 친구들이 와서 자유롭게 수종들도록 허락했습니다.(24:23) 이 천부장의 편지 역시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입니다. 악한 사람이라고 꼭 내게 악하게 대하지는 않습니다. 악인도 착한 대접을 하게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 악하다고 욕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면 악한 사람들도 내게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는 사람들이 됩니다. 여러분 보세요. 악한 사람에게는 별로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도리어 착한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더 받아요. 착한 사람이라고 내게 잘 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 손에 달렸습니다. 악한 사람도 하나님이 그 마음을 움직이면 얼마든지 내게 유익한 사람이 됩니다. 에스더를 왕비로 뽑은 아하수에로 왕은 폭군입니다. 그러나 에스더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큰 유익을 끼쳤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세요. 하나님을 거스리면 모든 사람이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 뜻을 따르면 모든 사람이 내 편이 됩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16:7) 이런 삶의 원리를 터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은 계속된다

 

오늘 말씀을 두 가지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사명이 있는 한 내 삶의 길은 보장됩니다. 바울에게 로마 전도의 사명을 주신 하나님은 바울이 로마로 가는 동안 모든 신상의 안전을 지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사명이 있는 한 삶은 보장됩니다.

 

둘째로, 로마로 가는 방법은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죄수로 가든지, 자유인으로 가든지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밤중에 가든지, 낮에 가든지, 즉시 가든지 머물다 가든지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육로로 가든지, 배를 타고 가든지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즐겁게 가든지 괴롭게 가든지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신비하게 성취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도 그렇습니다. 실패한 것 같은 성공입니다. 마귀가 이긴 것 같은데 예수님이 이기셨습니다. 모든 정죄를 이겼고, 모든 사망을 이겼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지옥의 형벌에서 건지셨습니다. 사망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성취에 우리 삶을 맡기세요.

다시 첫 번째 주제로 돌아갑니다. 내가 할 일은 목표를 잃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 예수님 십자가 전하는 큰 사명을 잃지 마세요.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기 다른 다양한 삶의 길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어떤 삶의 길을 가든지, 어떻게 이루든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세요. 하나님께서 내가 알지 못하는 무궁무진하게 많은 방법으로 내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필경은 하나님의 목표를 달성하십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사명에 살되,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지는 마세요.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내가 전혀 원하지 않는 방식이라 해도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계속 일하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