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 공과 2013년 4월 12일

 바울이 에베소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 전도하다.

사도행전18장18절~28절

 에베소란 어떤 도시였습니까?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던 당시 로마제국 내에 4대 도시가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에베소였습니다. 그중에서 에베소는 아시아 지역을 다스리던 수도였습니다. 해안에서 5km정도 육지로 들어간 카이스터 강가에 위치한 도시로 로마에서 동방에 이르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소아시아 최대의 무역 중심이었습니다. 에베소를 중심하여 계시록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와 골로새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가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에베소에 가기 전 에베소에서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가르치던 아볼로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마치면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를 에베소에 머물게 했습니다 에베소란 어떤 도시였습니까?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던 당시 로마제국내에 4대 도시가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에베소였습니다. 그중에서 에베소는 아시아 지역을 다스리던 수도였습니다. 해안에서 5km정도 육지로 들어간 카이스터 강가에 위치한 도시로 로마에서 동방에 이르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소아시아 최대의 무역 중심이었습니다. 에베소를 중심하여 계시록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와 골로새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 머무르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아볼로에 대해서 공부하려면 먼저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24절 서두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라고 시작하지요?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로마제국 내에서 로마 다음으로 큰 도시였습니다. 아프리카 북단 나일 강 하류에 위치한 도시였는데 알렉산더 대왕이 BC332년에 제대로 된 계획도시를 만들어 보자(분당, 일산처럼)해서 만든 도시가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상업과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소장된 장서가 50-60만권 정도가 되었다고 하니 학문적인 열정과 수준을 짐작 할 만 합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애급사람, 로마사람, 헬라사람, 유대사람 이렇게 네 민족이 살았는데 그 중에 유대인수가 100만 명이 되었다고 하니 유대사람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종교생활과 학문 활동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볼로는 바로 이런 분위기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또 하나 알렉산드리아는 히브로 말로 쓰여 진 구약의 성경을 최초로 히브리말에서 희랍어로 번역한 곳이 바로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70명이 번역했다고 해서 ’70인 역 성경’이라고 합니다.

1.아볼로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 아볼로는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24)

 ”24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⑴ 먼저 학문이 많다는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학문이 많다는 의미는 많이 배웠다는 뜻입니다. 이미 살펴 본대로 알렉산드리아는 학문적인 분위기가 대단했었습니다. 애굽과 헬라의 학문도 많이 배웠을 것이고 유대인이었으니 히브리 철학에도 능통했을 것입니다. 아볼로는 애급에서 최고의 학문을 배운 지성인이었습니다. 학문적인 권위는 하루아침에 생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배울 기회가 생겼을 때 열심히 배우시기 바랍니다. 배우지 않고서 배운 사람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배운 사람은 배우지 못한 사람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이렇게 저렇게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기회가 있을 때 마다 공부해야 합니다. 또 하나 학문이 많다는 헬라어 ‘로기오스(λογιοσ)’는 ‘유식한’이라는 의미와 함께 ‘말 잘하는’ 이란 뜻도 있습니다. 아볼로는 풍부한 학식과 함께 천부적인 언변(言辯)도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말 만 잘 한다’ 고 하면 이것도 문제이겟지만 자기가 배운 바를 잘 표현 할 수 있을 정도로 말 잘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28절 후반 절을 보면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 일러라’ 유대인들에게 힘 있게 논박했다는 말씀인데, 아볼로가 얼마나 언변이 뛰어난가 하는 점을 보게 해 줍니다. 아볼로는 학문적 깊이가 있을 뿐 만 아니라 말도 잘했어요. 바로 이런 아볼로의 능력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데 귀하게 쓰임 받지 않습니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열정도 있었습니다.

 ⑵ 아볼로는 성경에도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에 능통한 사람입니까? 신학공부를 많이 한 사람입니까? 헬라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내용이나 흐름을 훤하게 아는 것이 성경에 능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성경의 중요한 내용을 줄줄이 암기하는 사람이 능한 사람입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 맞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그런 것 만 가지고 성경에 능하다고 말하기는 부족하지요. 성경에 능하다는 말은 성경의 진정한 의미를 잘 깨닫고 깨달아 진대로 믿고 믿는 대로 생활에 적용하여 실천하며, 다른 사람에게도 가르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성경에 대하여 배운 것이 많고, 아는 것도 많아도 성경이 그 사람의 삶과 생활에 아무런 관련도 없고 영향도 미칠 수 없다면 소용없는 일 아닙니까? 세상을 보면 학문이 능하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성경을 멀리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사람을 보는데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아볼로는 세상 학문에도 능 할 뿐 아니라 성경말씀에도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볼로가 어떻게 성경에 능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25절 첫 부분을 보면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주의 도(the way of the Lord)란 한마디로 기독교를 말합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무엇을 믿는가와 함께 믿는 바를 실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生)의 길입니다.

 ’배웠다’는 희랍어 ‘카테케메노스(κατηχημενοσ)’라는 단어의 의미는 ‘배웠다’는 뜻인데 제대로, 깊이 있게 배웠다는 말입니다. 스승이나 부모로부터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웠다는 뜻입니다. 신앙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배웠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여기저기서, 이 얘기, 저 얘기 들어서 아는 정도가 아니라 신앙의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하여 제대로 배웠다는 뜻입니다. 아볼로는 바로 어려서부터 성경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제대로, 체계적으로 배웠다는 말씀입니다. 뿌리 있는 신앙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어떻게 공부하십니까?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주어 모으듯이 성경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나무를 우선 흔듭니다. 사과가 떨어지면 주워 담고 그리고는 큰가지를 흔듭니다. 그래도 떨어지지 않는 사과는 작은 가지마다 사과를 따냅니다. 좀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면 처음에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까지 계속 읽는 것입니다. 통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연구의 가장 초기단계입니다. 1년에 성경 꼭 한번이상 통독하세요. 이것이 성도의 기본입니다.

 그 다음에는 책별로 장별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은 마라에서의 이야기, 출애굽기 20장은 십계명… 요한복음 2장은 가나혼인잔치의 기적과 성전정화사건 등 또 주제별, 단어별로 공부하기도 합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기적처럼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성경에 대하여 묻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너무 잘 가르쳐서 모르는 것이 없다는 뜻인지 아니면 성경을 너무 읽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뜻인지.. 아볼로는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 한자’라 했습니다. 열심히 배우고 연구했다는 뜻이고 성경에 대해서도 많이 연구하고 아는 대로 행하며 산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열심히 배웁시다. 특별히 성경에 대해서 많이 배우시고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생명수가 여러분 삶속에 흐르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열려진 마음으로 말씀과 깊이 만나고 말씀을 사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체험으로 내게 와야 합니다. 그렇게 사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아볼로는 누구를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습니까?

 ”25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여기서 아볼로의 문제와 한계가 발견됩니다.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아볼로는 일찍부터 ‘주의 도’를 체계적으로 잘 배웠습니다. 몇가지 생각해 봅니다.

 ’열심으로’라는 헬라어를 직역하면 ‘영으로 뜨거워져서’라는 뜻이 있습니다.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열정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자세히 말하며 남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열정이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아볼로는 뜨거운 사람,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예수에 대해서 가르쳐본 적 있나요? 누구에게 복음을 제시해 본 적 있나요? 예수 믿은 지가 몇 년 되셨습니까? 몇 사람에게 예수에 대해 가르치고 예수 믿으라. 권해 보셨나요? 이런 얘기 들으면 등에서 식은땀이 나십니까? 남에게 가르친다는 것 – 더구나 예수에 대하여 분명하게 가르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요.

 ● 아볼로가 예수에 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긴 했는데 그런데 요한의 세례밖에 몰랐다는 말씀입니다.

 25절 성경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아볼로가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배웠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알 수는 없습니다. ‘예수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는데 요한의 세례밖에 몰랐다’ – 무슨 뜻입니까?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참 미묘한 성경구절이라서 이 구절에 대한 해석도 분분합니다만 이런 정도로 정리합니다. 요한이 베푼 세례는 물세례였습니다. 물세례와 대칭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성령세례. 아볼로는 열정적이었고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긴 했지만 성령세례는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9장으로 가면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물었더니 대답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였습니다. 이런 정황을 미루어볼 때 아볼로가 ‘요한의 세례 – (물세례)-밖에 몰랐다’는 말씀은 성령세례 못 받았다는 해석이 맞는 것으로 봅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아볼로가 성경에 능해서 구약의 메시야에 대해서도 알았고 예수에 대하여도 알았다 했는데 문제는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시오 메시야 이 심에 대한 증거와 확신이 아볼로에게는 없었던 것으로 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자가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다른 하나는 아볼로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해 열심히 가르치기는 했습니다. 예수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아서 남에게 가르치기도 했지만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알지는 못했지요. 종교적 열정과 합리적 학문성 때문에 남에게는 가르칠 수 있었지만 자신은 경험치 못햇던 것으로 봅니다. 죄에 대해서 가르치면서도 자신에게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없습니다. 이론과 지식은 있지만 마음에 체험과 감격은 없는 반쪽짜리 믿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예수가 힘이요 능력이 되겠습니까? 아볼로는 학문도 높앗습니다. 성경도 잘 알았고 가르치기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습니다.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볼로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고 여기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대해서도 예수에 대해서도 알기는 많이 아는데 감동이 없습니까? 기쁨이 없습니까? 반쪽짜리 신앙입니다. 체험하셔야 합니다. 성령체험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야 기쁨이 옵니다. 그래야 구원의 감격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체험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머리만의 신앙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이 함께 뜨거운 감격으로 채워지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신앙이 내게 능력이 됩니다.

 3. 아볼로는 대단히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26)

“26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회당에 갔다가 아볼로가 예수에 대해 담대히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들어보니 아볼로가 가르치기는 잘하는데 내용에 좀 부족한 것이 있엇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조용히 자기 집에 데려다가 자기들의 알고 체험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인품을 엿볼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볼로는 학문에 있어서나 성경에 있어서나 실력있는 학자였습니다. 그런데 들어보니까 문제가 있엇습니다. 보통사람같으면 여럿이 있는 공개석상에서 질문도 하면서 아볼로에게 있는 허점을 부각시키려 했을 것입니다. ‘대학자도 별 수 없구나’ 실력있는 사람이 실수하면 마음이 어떻습니까? ‘별 수 없구나’ 한소리 하지요. 그 속에는 ‘나도 많이 안다는 자만심도 있을 수 있고’ ‘대단한 사람도 실수도 하는데 나 같은 사람이 별 수 있겠어?’하는 자기 합리화의 마음도 잇을 수 있는데 하여간 좋은 것은 아닙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아볼로를 조용히 자기 집에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함께 있으면서 배우고 체험했던

‘주(主)의 도(道)’-복음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아볼로가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대학자 아볼로가 서민들의 직업인 천막 만드는 브리스길라와 아불라 부부에게 배운다는 것 – 쉬운 입니까? 그것도 학문과 성경에 능한 사람인데 말입니다. 상상이 안 되는 모습입니다. 이점이 바로 아볼로의 위대한 점 아니겠습니까? 남에게 배운다는 것 자체가 겸손입니다. 겸손한 태도가 없으면 결코 남에게 배울수가 없습니다. 아볼로는 가르치기도 잘 했지만 겸손하게 배울 줄도 알았습니다. 왜 아볼로를 위대하다 합니까? 가르치는 사람이 남에게 겸손하게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요.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심성이 참 중요 합니다. 잘못되고 어리석은 사람은 배울수록, 많이 알수록 더 어리석어 집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배울수록 더 지혜로워 집니다. 아볼로는 공부는 많이 해서 많이 알긴 했지만 체험이 없었어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배운 것은 많지 않았어도 체험이 있었어요. 아볼로는 바로 브리스길라 부부로부터 체험에서 나오는 생생한 증거를 통하여 참으로 지혜로운 자가 됩니다. 제가 목사인 것을 알고는 가끔 성경에 대한 엉뚱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 없는 사람,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이 성경 많이 알면 목사에게는 참 골치 아픈 일입니다. 질문해도 자신이 신앙에 대해서 예수에 대해서 무엇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골탕 먹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꼭 이상한 질문만 합니다. “임신한 마리아가 마굿간에서 애 낳을 정도의 몸으로 어떻게 하루 종일 걸었습니까?” “어떻게 사람이 900살 넘게 살 수가 있습니까?” 그러면 저도 “모릅니다” 하면 “목사가 그것도 모릅니까?” 그런 것을 안들 신앙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믿음 없는 사람들은 꼭 이상한 것만 눈에 뜨이게 마련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성경 볼 때 어떤 것이 눈에 들어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볼로의 겸손함이 돋보입니다. 세상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 나보다 못하게 보이는 사람을 만난다 해도 한 가지 이상은 꼭 배울 것이 있어요.

그래서 그 이후에 어찌되었지요. “27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며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어김일러라”

 아볼로가 자신의 학문과 성경의 능함 위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로부터 체험적 신앙을 배우자 은혜가 넘쳐나기 시작합니다. 가는 곳마다 은혜를 끼치기 시작합니다. 변론에도 뛰어났기에 말씀과 은혜가 합친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임을 증거 합니다. 유대인들이 말로는 결코 아볼로를 당하지 못합니다.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아볼로의 학문적 지식과 성경에 능통함과 뛰어난 언변위에 체험적 신앙이 더해지자 엄청난 힘이 붙기 시작합니다.

 2. 아볼로에게서 배워서 우리 삶에 적용 할 점은 ?

 아볼로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학문도 많고, 성경에도 능하고 언변도 뛰어났습니다. 거기다가 인품도 좋아서 세상 사람들이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는 서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도 겸손히 배울 줄도 알았습니다. 아볼로는 성경을 평소에 열심히 공부 하였으며 자신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서도 열심히 배웠습니다.. 유대인인 자신이 성경에 능통하고 해박했으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의 부족한 부분을 가르쳐 줄 때 겸손히 배웠습니다. 그가 몰랐던 것은 요한의 세례까지 알고 성령에 대한 부분은 아직 체험도 알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두사람은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볼로가 얼마나 힘 있게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라고 담대하게 증언 하였습니다. 성경에 능하다는 것은 단순히 많이 안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삶속에서 적용하고 실천하여 한 단계 한 단계 성숙해 가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닮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아볼로에게서 배워야 할 점입니다.

 3. 오늘 공부한 말씀에 질문을 만들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