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Thomas Kim

시골집에서 불이 나면 외양간의 소를 끌어내는 것이 큰 일 입니다. 소가 절대로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센 장사도 끌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방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소의 여물통을 엎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가 ‘이제는 이곳에 소망이 없구나. 이곳에는 더 이상 내가 먹을 것이 없구나’라고 생각하는지 제 발로 밖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우리를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이끌려고 하실 때, 고난을 사용하시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외양간의 소 같아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께 순순히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만 진정 행복하다고 여기지 못하고 삽니다. 오히려 여물통을 엎으시는 하나님 때문에 영적으로 무너진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물통을 엎지 않으면 불에 타 죽을 수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여물통을 엎으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죽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물통을 엎으실 때, 우리는 많이 힘들고 아픕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통은 잠깐이요, 생명은 영원합니다. 엎어버린 여물통 대신에 주님이 우리의 여물통이 되심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여물통을 “내어놓으라” 하십니다. 우리가 “이것만은 건드리지 마세요”라고 악착같이 붙잡고 있는 여물통을 건드리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중에 알게 됩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여물통에 연연하지 않게 됩니다. 여물통이 엎어져도 행복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119:71)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한 찔림과 상함과 채찍에 맞음이 있었고, 그분의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죄 사함을 위한 산 제물이 되사 죽으셨다 부활하셨기에 우리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이 부활에 계절에 아직도 우리에게 버려야 할 것은 없는지 한 번 더 살펴봄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