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문제,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나
기독교경제윤리 연재기획6 : 자본/대부에 관한 기독교경제윤리
데스크 승인 2013.04.13 14:53:43 희년함께 (landliberty)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와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영화 모두 빚 문제가 영화의 배경에 깔려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영화 ‘화차’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신용카드 빚으로 인해 불행해진 여성의 인생을 그린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火車)를 각색하여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 화차에서 배우 김민희는 아버지가 남긴 빚으로 인해 한 여자의 인생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잘 보여 준다.
영화 ‘피에타’에서 배우 이정진은 끔찍한 방법으로 채무자들의 돈을 뜯어내며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 ‘강도’로 나온다. 영화 피에타는 우리 사회의 끔찍한 빚 문제를 잘 보여 주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피에타3법(이자제한법, 공정대출법, 공정채권추심법)’이라는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빚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문제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 가계 부채가 1000조 원을 넘었다고 한다. 국가 부채도 1000조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2012년 말 정부 부채는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재정 적자를 기록하면서 445조 9000억 원으로 늘었고, 중앙 공기업 부채는 442조 원, 지방 공기업 부채는 70조 원대로 늘어났다고 한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국가 부채가 1000조 원에 육박하는 셈이다.
가계 부채도 집값 및 전월세 폭등으로 인한 대출과 사업 및 생계로 인한 대출을 합쳐 1000조 원을 넘었다고 한다. 대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학자금 대출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다. 주위를 둘러봐도 주변에 빚 없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빚을 지는 이런 세상이 정상적인 세상일까?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개인이나 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이자와 원금을 갚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서는 누군가에게 돈이나 재화를 꾸어 주고 이자와 원금을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 특히 가난한 사람에게 꾸어 주고 이자와 원금을 받는 것에 대해 뭐라고 말씀할까? 꾸어 주고 이자를 받는 것과 빚보증, 저당/담보에 관한 성경 말씀을 먼저 살펴보자.
대부와 이자에 관한 성경 말씀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출 22:25~26).”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레 25:36~37).”
“매 칠 년 끝에는 빚을 면제하여 주십시오. 면제 규례는 이러합니다. 누구든지 이웃에게 돈을 꾸어 준 사람은 그 빚을 면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면제를 선포하였기 때문에 이웃이나 동족에게 빚을 갚으라고 다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방 사람에게 준 빚은 갚으라고 할 수 있으나, 당신들의 동족에게 준 빚은 면제해 주어야 합니다(신 15:1~3, 표준새번역).”
“네가 형제에게 꾸어 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 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 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신 23:19~20).”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를 짓지 아니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하게 판단하며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하게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반드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18:8~9).”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거나 이자를 받거나 할진대 그가 살겠느냐. 결코 살지 못하리니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은즉 반드시 죽을지라.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18:13).”
“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리나 이자를 받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진대 이 사람은 그의 아버지의 죄악으로 죽지 아니하고 반드시 살겠고 (겔18:17).”
“네 가운데에 피를 흘리려고 뇌물을 받는 자도 있었으며 네가 변돈과 이자를 받았으며 이익을 탐하여 이웃을 속여 빼앗았으며 나를 잊어버렸도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2:12).”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느5:6~13).”
“높은 이자로 재산을 늘리는 것은, 마침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은혜로 베풀어질 재산을 쌓아 두는 것이다(잠 28:8, 표준새번역).”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시 15:5).”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시 37:21).”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눅 6:35).”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눅 19:23).”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빚보증에 관한 성경 말씀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잠 11:15).”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잠 17:18).”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잠 20:16).”
“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잠 22:26).”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잠 27:13).”
“너보다 더 세력 있는 사람에게 돈을 꾸어 주지 말아라. 혹 꾸어 주었거든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하여라. 네 능력 이상으로 보증을 서지 말며 보증을 섰으면 대신 갚을 각오를 하여라(집회서 8:12~13).”
빚에 따른 저당/담보에 관한 성경 말씀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출 22:26~27).”
“사람이 맷돌이나 그 위짝을 전당 잡지 말지니 이는 그 생명을 전당 잡음이니라(신 24:6).”
“네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 줄 때에 너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전당물을 취하지 말고 너는 밖에 서 있고 네게 꾸는 자가 전당물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그가 가난한 자이면 너는 그의 전당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 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신 24:10~13).”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 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욥기 24:2~4).”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주며 강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를 짓지 아니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하게 판단하며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하게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반드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이 모든 선은 하나도 행하지 아니하고 이 죄악 중 하나를 범하여 강포하거나 살인하거나 산 위에서 제물을 먹거나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거나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학대하거나 강탈하거나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주지 아니하거나 우상에게 눈을 들거나 가증한 일을 행하거나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거나 이자를 받거나 할진대 그가 살겠느냐. 결코 살지 못하리니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은즉 반드시 죽을지라.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또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그 아버지가 행한 모든 죄를 보고 두려워하여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도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도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도 아니하며 사람을 학대하지도 아니하며 저당을 잡지도 아니하며 강탈하지도 아니하고 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리나 이자를 받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진대 이 사람은 그의 아버지의 죄악으로 죽지 아니하고 반드시 살겠고 그의 아버지는 심히 포학하여 그 동족을 강탈하고 백성들 중에서 선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는 그의 죄악으로 죽으리라(겔 18:7~18).”
“저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겔 33:15).”
“그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 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느 5:1~5).”
성경은 이자 자체를 금하는가
빚에 대한 성경의 전체적인 느낌은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다. 빚을 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는 느낌이다. 구약의 율법서(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와 예언서(에스겔), 느헤미야, 시편, 지혜서(잠언), 신약의 복음서(누가복음)에서는 모두 꾸어 주고 이자를 받지 말라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자 자체를 금하는 것일까?
구약 율법은 같은 이스라엘 동족에게서 이자 받는 것을 금한다. 이자 금지 규례는 이방인이 아닌 오직 같은 이스라엘 동족에게만 적용된다. 대부분의 성경 말씀은 꾸어 주고 이자를 받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이방 사람에게 준 빚은 갚으라고 할 수 있으나 당신들의 동족에게 준 빚은 면제해 주어야 합니다(표준새번역)”라는 신명기 15:3 말씀과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 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라는 신명기 23:20 말씀은 이방인(타국인)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허용한다.
성경에는 같은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이자를 받지 말라는 말씀은 많지만 이자를 받으라는 말씀은 신명기 15:3, 신명기 23:20 두 구절뿐이다. 또 꾸고도 갚지 않는 것에 대해 나쁘다고 말씀하는 것은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라는 시편 37:21 한 구절뿐이다.
신명기 23:20에 나오는 이자를 받아도 되는 이방인(타국인)은 이방인을 뜻하는 세 가지 히브리어 게르(ger), 토샤브(tosab), 노크리(nokri) 중에서 노크리에 해당한다.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객(게르)이나 우거하는 자(토샤브)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레 25:35~37)”는 말씀 중에서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되는 이방인은 객(게르)과 우거하는 자(토샤브)다. 게르와 토샤브에게서는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되고 노크리에게서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는 말이다.
구약학자 시릴 로드(Cyril S. Rodd)는 (Edinburgh: T&T Clark)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사는 게르와 토샤브와는 달리 노크리는 잠시 동안 이스라엘에 거주하거나 지나가는 외국 상인이라고 해석한다. 이스라엘 거주자가 아닌 상업을 목적으로 온 이방인(노크리)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는 해석이다.
이스라엘 동족을 비롯해 게르, 토샤브가 아닌 노크리에게서는 이자를 받아도 되고 이들은 빚 탕감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또 시편 37:21은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준다고 말씀하는 동시에 갚을 수 있는데도 꾸고 갚지 않는 것은 악한 것이라는 채권자와 채무자 양쪽의 윤리를 말씀한다.
가난한 사람을 ‘물어뜯는’ 이자와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이자
롤랑 드보(Roland de Vaux)는 <구약시대의 생활 풍속>(대한기독교서회)에서 이자를 뜻하는 히브리어로 네쉐크(neshek)와 타르비트(tarbit) 중에서 네쉐크는 ‘물어뜯다’, 타르비트는 ‘증가’를 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네쉐크는 출애굽기와 신명기, 시편 55:5절에서만 나타나고, 후기 시대의 문서들에서는 네쉐크가 타르비트와 나란히 사용되며 두 의미의 구별을 어렵게 한다고 드보는 말한다.
드보는 채무자가 빚 문서에 60세겔을 빚졌다고 쓰고 실제 빌리는 돈은 40세겔일 때 20세겔은 채권자에게 이미 ‘물어뜯긴(네쉐크)’ 것이고, 만기일에 60세겔을 되갚을 때 ‘증가(타르비트)’된 20세겔을 갚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눅 16:1~8에서 빚진 사람의 빚 문서에서 빚을 줄여 주는 불의한 청지기를 오히려 지혜롭다고 칭찬하신 것은 이런 상황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네쉐크를 뜻하는 이자는 가난한 사람을 물어뜯는 부정적인 의미를, 타르비트를 뜻하는 이자는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이자인 것으로 보인다. 가난한 사람을 ‘물어뜯는’ 이자를 받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이자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이자를 금지하고 모든 부채의 탕감을 말씀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어려움을 통해 이자 수익을 얻는 건 비윤리적
상업을 목적으로 온 타국인이 돈이나 재화를 빌리는 경우는 생활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본을 빌려서 더 많은 이윤을 남길 목적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성경은 암시한다. 만약 누군가가 생활이 어려워서 빌리는 것이 아닌 이윤을 남길 목적으로 남의 자본을 빌려서 사업을 하여 더 많은 이윤을 남겼다면 이에 대한 이자를 받는 것은 정당하다는 말이다.
예수님도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눅 19:23)”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사업을 위한 대부에 따른 이자는 정당한 것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사업을 위해 필요한 자본을 빌려 주고 상호 유익을 도모하는 것은 좋은 일이며 이런 자본 대부에 따른 이자는 자연스럽고 정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난과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서 이자를 받으면서(물어뜯으면서) 이들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과 파산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은 잘못이라는 뜻이다.
구약에서 빚을 지는 사람은 땅을 잃은 가난한 사람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평등하게 땅을 분배받고 자기 노동의 열매를 누리며 사는 상태에서 빚을 지게 되는 사람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거나 불가피한 이유로 인해 노동을 할 수 없어서 자기 땅을 희년까지 다른 사람에게 팔고도 가난에 처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거나 불가피한 이유로 인해 노동할 수 없는 사람은 일단 자기 땅의 일부 혹은 전부에 대한 사용권을 희년까지만 팔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땅을 팔았어도 친족(고엘)이나 자신이 다시 무르기를 할 수 있었다. 친족도 자신도 무르기를 할 수 없으면, 모든 이스라엘 사람은 희년까지만 땅의 사용권을 팔 수 있기 때문에, 희년이 되면 다시 땅을 돌려받게 된다.
구약 이스라엘에서 빚을 지게 되는 사람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거나 희년까지 땅의 사용권을 다 팔고 난 후에도 생계가 어려워 다시 빚을 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희년까지 땅을 팔아 버린 사람은 빚을 갚지 못하면 이스라엘 동족의 품꾼이 되거나 최악의 경우 이방인의 품꾼이 된다. 이런 사람에게 꾸어 주고 이자를 받는다는 것은 같은 동족을 품꾼이나 종의 상태에 계속 빠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런 가난한 사람에게서는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거나 희년까지 땅을 팔아 버리고도 생계가 어려워 빚을 진 사람에게 이자를 받게 되면 다시 일어서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가난에 처한 이스라엘 동족에게 꾸어 주고 이자를 받지 말라는 말씀은 가난한 사람이 다시 일어서서 자기 땅과 가족을 회복하고 자유인이 될 수 있도록 이자를 받지 말라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안식년의 빚 탕감, 전부인가 일부인가 유예인가
신명기 15:1~3에서는 “매 칠 년 끝에는 빚을 면제하여 주십시오. 면제 규례는 이러합니다. 누구든지 이웃에게 돈을 꾸어 준 사람은 그 빚을 면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면제를 선포하였기 때문에 이웃이나 동족에게 빚을 갚으라고 다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방 사람에게 준 빚은 갚으라고 할 수 있으나, 당신들의 동족에게 준 빚은 면제해 주어야 합니다(표준새번역)”고 말씀한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은 일곱 번째 안식년(면제년)에 탕감해 주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빚을 탕감해 주라는 유일한 구절인 신명기의 안식년(면제년) 빚 탕감 규례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서로 엇갈린다. 어떤 학자는 빚의 완전한 탕감이 아니라 안식년 1년 동안에 진 빚만을 탕감해 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 어떤 학자는 안식년에는 빚을 유예해 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안식년에는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지 못하고 안식년이 끝나면 빚을 다시 받는다는 말이다.
안식년의 빚 탕감이 일부 탕감이나 빚의 유예라는 해석의 근거는 안식년에는 땅의 휴경으로 인해 소득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그 해에는 빚을 갚으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이방인에게는 부채 탕감을 해 주지 않은 것도 이방인은 안식년에도 경작을 하여 소득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안식년에 빚을 모두 탕감해 주면 꾸고서도 갚지 않으려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나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안식년(면제년)의 부채 탕감이 빚 전부를 탕감해 주는 것이 아닌 안식년 1년간의 빚만을 탕감해 주거나 안식년 1년 동안만 빚 갚는 것을 유예해 주는 것이었다면 빚을 진 사람이 다시 자립하여 자신의 땅과 몸을 회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하루 빨리 자신의 땅과 몸을 회복하여 자유인이 되라고 말씀하는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에 맞지 않는다. 안식년의 빚 탕감이 안식년 1년간의 빚만을 탕감해 주거나 안식년 1년 동안 빚 갚는 걸 유예해 주었다는 주장은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에 비춰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안식년의 빚 탕감을 회피하기 위해 랍비 힐렐이 프로스불(Prosbul) 제도를 만든 점이나, 고고학적으로 채무자가 안식년을 통해 예상되는 이익을 단념한다는 조항이 담긴 빚 문서가 발견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안식년에 빚을 탕감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안식년의 빚 탕감은 1년간의 빚 탕감이나 빚의 유예가 아닌 전체 탕감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빚으로 인해 저당 잡힌 토지도 안식년에 회복
대천덕 신부는 <대천덕 신부가 말하는 토지와 경제정의>(홍성사)에서 안식년에는 토지를 경작해서는 안 되며 저당권을 포함한 부채는 탕감되고 품꾼과 종은 해방된다고 말한다. 또한 빚을 져서 토지를 저당 잡힌 경우 안식년에 저당권이 말소되지만 희년까지 대가를 받고 토지 사용권을 빌려 준 경우에는 남은 기간의 임대료를 친족이나 자신이 무르지 않는 한 희년이 되기 전 안식년에도 본래의 임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빚을 져서 저당 잡힌 토지는 안식년에 부채가 탕감됨으로써 다시 되돌아오지만 대가를 받고 희년까지 사용권을 판 토지는 희년까지 남은 값을 치르고 무르기를 하지 않는 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식년에 부채가 탕감되었다는 말은 만약 토지가 저당 잡혔다면 저당 잡힌 토지가 다시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율법에서는 토지나 집을 저당 잡을 수는 없고 기껏해야 겉옷을 저당 잡을 수 있다. 겉옷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이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그 사람의 인격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당 잡은 겉옷마저도 그날 저녁에 다시 되돌려 주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에겐 겉옷이 덮고 잘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출 22:25).
구약 이스라엘에서 빚을 지게 되는 사람은 희년까지 토지의 사용권을 다 팔고 난 후에도 생계가 어려워 다시 빚을 지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빚을 질 때 토지를 저당 잡을 수는 없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 이스라엘 율법에서는 토지를 영원히 팔 수 없고 토지 무르기나 희년을 통해 언젠가는 다시 토지가 회복되기 때문에 자본을 빌려 줄 때 토지를 저당 잡았다가 빚을 갚지 못하면 토지를 돌려주지 않고 영원히 뺏는 것은 율법이 금하는 죄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느헤미야 5:3~5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 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을 보면 바벨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에서는 율법을 어기고 땅과 집을 저당 잡으면서 돈과 곡식을 빌려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빚을 갚지 못하면 동족을 종으로 만들고 땅과 집, 자식을 빼앗았던 것으로 보인다. 느헤미야는 바로 이런 반(反) 희년적인 이스라엘의 죄악에 분노한 것으로 보인다.
욥기 24:2~4의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저당) 잡으며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 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는 말씀을 보면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가축도 저당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열왕기하 4:1~7의 말씀을 보면 빚을 갚지 못해 채권자가 과부의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가려고 하자 엘리사가 기름을 만들어 주는 기적을 통해 그들을 구해 주는 장면을 보면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빚을 갚지 못하면 자식까지도 빼앗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식을 빼앗아 종으로 만드는 채권자에 대한 느헤미야의 질책과 빚으로 인해 자식이 종이 되는 것을 구해 준 엘리사의 행동,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사 50:1)”라는 말씀을 보면 빚을 갚지 못했을 때 채무자의 자식을 빼앗아 종으로 삼는 것은 성경이 금하는 악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약성경에 담긴 빚에 대한 가르침은…
땅을 희년까지 팔지 않은 상태에서 빚을 져서 토지가 저당 잡혔다면 저당 잡힌 토지를 안식년에 되돌려 주기 전까지 채권자는 토지를 통해 임대 수익이나 토지의 생산물 같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저당 집힌 토지는 안식년에 부채가 탕감되면 되돌려 주는 것이 맞다. 그런데 저당 잡았던 토지를 안식년과 희년이 되어도 되돌려 주지 않는 것은 강탈이자 도둑질이며 동족을 종으로 만드는 죄악이다.
반면 희년까지 대가를 받고 사용권을 빌려 준 토지까지 남은 값을 물러 주지 않고 안식년에 되돌려 준다면 토지를 빌려 준 사람에게는 이익이고 빌린 사람에게는 불이익이다. 따라서 안식년에는 빚으로 인해 저당 잡힌 토지가 있다면 부채 탕감과 함께 되돌려 주는 것이 맞지만, 희년까지 대가를 받고 사용권을 팔아 버린 토지는 무르기를 하지 않으면 희년이 되기 전까지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구약성경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거나 불가피한 이유로 인해 희년까지 땅을 팔고 가난해진 사람에게는 다시 자립하여 땅과 몸을 회복할 수 있도록 꾸어 주고 이자를 받지 말 것과 함께 안식년(면제년)에는 갚을 수 없는 빚은 탕감해 주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반면 가난한 사람이 아닌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무역이나 상업, 사업을 하는 이방인(외국인)에게 빌려 준 자본에 대해서는 이자를 허용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구약성경에 담긴 빚에 대한 가르침은 ‘빈민(貧民) 무이자 대부’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의 탕감’, ‘생산적인 대부의 이자는 허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빚보증에 관해 주로 잠언에 많이 나오는 말씀들은 빚보증을 서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이다. 대부분 빚보증을 서지 말라는 것이다. 외경인 집회서에는 “네 능력 이상으로 보증을 서지 말며 보증을 섰으면 대신 갚을 각오를 하여라(집회서 8:13)”고 말한다. 성경 말씀은 전체적으로 빚보증을 서지 말거나 대신 갚을 각오를 하면서 능력 안에서 빚보증을 설 것을 말씀하고 있다.
빚에 따른 저당/담보에 관한 말씀들을 살펴보면 빚을 졌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겉옷 이외에 다른 것은 저당 잡을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채권자가 저당물을 취할 때도 채무자의 집에 들어가서 저당물을 취할 수 없고 채무자가 직접 저당물을 가지고 나와서 주어야 한다(신 24:10~13).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강제로 끌어내는 차압이나 압류, 비인간적인 채권 추심 같은 것은 성경의 뜻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빚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지금까지 교회는 빚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 왔는지, 빚에 관한 성경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현대사회에 실천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고영근 / 희년함께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