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공부 2012년 9 월 14 일
사울이 교회를 박해하다.
사도행전8장1절~25절
고난을 일컬어서 “변장하고 찾아오는 하나님의 복”이라고 정의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고난같이 보이지만 복을 안고 오는 변장하고 오는 복입니다.[톱 레이디] 목사가 폐결핵으로 고통을 당하고 우울하던 시절인 32세 때인 1772년도에 만든 찬송시가 있습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내 걱정 근심을 쉬 없게 하시고 내 주여 어둔 영혼을 곧 밝게 하소서.”
1.오늘 공부할 말씀의 개요를 설명하여 보시오.
8장에는 핍박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를 흩어지게 하시고, 흩어진 제자들로 하여금 이방 선교를 수행케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가 역력히 부각되어 있다.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은 것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거시적으로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지상 명령을 수행하지 않던 당시 교회의 태도에 대한 하나님의 채찍인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본장은 교회를 핍박하는 사울(1-3절), 빌립의 복음 전파(4-8절), 세례 받은 시몬(9-13절), 두 사도의 사마리아 방문(14-25절),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의 만남(26-40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인해 예수님의 교훈과 행위가 유대주의로부터 확실하게 구분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새로운 이스라엘이라는 점이 지적된 것입니다. 본장에서는 기독교에 큰 핍박이 임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의 큰 시련이 시작된 것입니다.
1. 교회에 임한 핍박
1) 흩어진 성도들
스데반의 죽음으로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슬퍼하는 경건한 사람들이 그를 장사했습니다. 공회는 기독교를 해로운 종파로 선포했고, 이것을 근거로 남녀를 끌어 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가장 적극적인 핍박 자는 공회의 임명을 받고 그 명령을 시행하던 사울이었습니다. 이때에 제자들은 여러 도시로 피신해 갔습니다. 대부분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피신했고 어떤 이는 다메섹과 다른 곳으로 피신했습니다.
참고 a. 여러 형태의 핍박(히11:36)
b. 제자들의 흩어짐(마10:23)
2) 사마리아 성의 기쁨
그 흩어진 성도들은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사마리아에서는 특별히 빌립이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사마리아 성은 이방 도시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로 갔다는 사실은 당시 교회가 이방 선교를 심각하게 생각했다는 증거입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본받아 행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에게 호감을 주는 선교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는 오랫동안 서로 적대시해 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리가 빌립의 말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복음이 전파된 곳에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사마리아 성에도 기쁨이 넘쳤습니다.
참고 a. 표적(요2:23)
b. 영적인 기쁨(요16:22)
3) 마술사 시몬
사마리아 성에는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시몬은 마술을 행하며 사마리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자칭 하나님의 대변자 혹은 대리자라고 하여 사람들을 미혹케 했습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라 그를 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빌립의 전도로 믿게 되자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능력에 놀랐습니다.
참고 예수를 믿고 세례 받음(막16:16)
2. 베드로를 만난 시몬
1) 사마리아의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
사마리아에서의 빌립의 성공이 예루살렘에 알려지자 예루살렘 교회는 기쁨과 놀라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음을 알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 곳으로 보내서 선교 사역자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사마리아 교회에 새로운 계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인들이 성령을 받기를 기도했습니다. 이는 아직 한 사람도 성령을 받은 일이 없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만을 받은 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기도와 안수는 사마리아인들 가운데서 빌립의 사역을 확증했습니다. 또한 사마리아인들에게는 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해묵은 반목이 이제 그리스도의 새 질서 안에서 깨끗이 사라졌음을 특별히 확증하는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증거는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에서 내져와 그들에게 안수 할 때 임했습니다. 성령께서 오순절 날 사도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임하실 때와 같은 방식으로 곧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참고 성령 받기를 기도함(행2:38)
2) 성령에 대한 시몬의 오해
성령의 능력으로 이전에 원수였던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빌립의 기적은 시몬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사도들이 안수할 때 일어난 결과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때, 그 현상은 볼 수 있고 또한 들을 수 있게 나타났으므로 시몬이 주목해 보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사도들이 마음 대로 사용할 수 있는 마술 이상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능력을 돈을 주고 사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시몬이 가진 신앙의 진실성에 의문을 던지면서 그의 세속적인 야망을 책망했습니다.
참고 a. 돈으로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사55:1)
b. 바르지 못한 마음(시78:37)
2.고난과 어려움을 복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을 정리하여 설명 해 봅시다.
첫째 고난과 어려움을 복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사람들은 보통 고난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고는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은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지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습니다.
주님은 이 땅을 떠나실 때 우리 교회가 반드시 순종해야 될 귀한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예루살렘교회는 이 사명에 불순종하였습니다.
교회가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전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지 모이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교회는 모이는데 힘썼지만 순종해야하는 귀한 사명을 잊고 있었습니다. 이 때 교회에 핍박이 오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죽임을 당하는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가 큰 핍박이 나서 사도들 외에는 흩어지게 되었고, 사울이라는 사람이 교회를 잔멸하려고 하였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핍박이 얼마나 거세였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폭풍처럼 쓸고 지나가는 엄청난 위기였습니다. 사울은 아예 교회를 뿌리 채 싹 쓸어버리겠다는 필사의 각오로 믿는 사람들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수색하여 잡아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성도들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4절 말씀을 보면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물론 핍박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는 것입니다. 핍박이 시작될 때는 사단이 승리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없애 버리려는 사단의 작전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루살렘에만 있던 교회가 온 사방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큰 뜻을 성취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삽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성공하고 승리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기독교는 ‘순종’의 종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멘’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고후 1:20).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아무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아멘’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아멘’ 하고, 축복 속에서도 ‘아멘’ 해야 합니다. 건강할 때도 ‘아멘’ 이요, 아플 때도 ‘아멘’입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기적의 말씀을 듣고서도 ‘아멘’ 하는 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 복과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핍박 속에서도 흩어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뿐 아니라 7-8절에 보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 사르밧 과부도, 마지막 남은 기름과 밀가루로 떡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는, 절박한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는 이 과부에게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했던 떡을 자기한테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만약 그것을 가져오면 하나님께서 가뭄이 끝날 때까지 통의 밀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食口)가 여러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 17:15∼16)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순종하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고난 중에라도 어려운 환경중이라도 순종하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바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문제는 우리가 순종을 하느냐, 안하느냐 입니다. 이것이 결정적인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을 했더니 통에 가루가 없어지지 않고 병에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은 그릿 시냇가의 기간을 빼고 대략 2년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가루를 뜨면 가루가 또 생기고 또 생기고, 기름을 부으면 기름이 또 생기고 또 생기고 계속해서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라고 했습니다. 먹고 남아서 일가친척까지 나누어 줄 수 있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바로 ‘순종’을 통해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순종하고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총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레미야 7장 23절에 예레미야는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결코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순종을 통해서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복을 계속적으로 받게 하는 조건이다.”라고 했습니다. 한번 순종하고 두 번 순종하고 끝까지 하나님 앞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순종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 1906∼1945)는 “신앙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을 복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2. 고난을 복으로 변화시키려면 영적으로 바로 서야 한다.
고난과 어려운 환경을 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상황에서도 영적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환경을 복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영적으로 바로 서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기회를 고난 가운데서도 붙잡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빌립이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하는 것을 시몬이라고 하는 마술사가 보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자칭 큰 자라 생각하였던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을 만나 예수님도 믿고 세례도 받고 교회 회원이 되어서 빌립과 함께 다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돈으로 그것을 사려고 하다가 베드로에게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다고 신앙고백도 하고 세례까지 받았고 빌립과 함께 다녔으나 참 믿음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복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뿐 만 아니라 자신의 환경을 복의 환경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2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우리의 신앙이 바로 서지 않으면 복의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시몬은 성령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복을 놓쳤습니다.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 ; 1620~1686)은 “재물을 잃으면 아무것도 잃은 것이 아니다. 생명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예수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마음에서부터 믿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바로 서 있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 만난 분명한 감격과 기쁨이 있습니까? 주님을 믿는 동기가 올바르십니까? 마술사 시몬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권능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어떤 기록에 보면 시몬이 “눈물이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면 틀림없이 은혜를 많이 받은 크리스찬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결과 그렇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올바르게 서지 못하면 잘못된 동기로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신앙이 영적으로 바로 설 수 있을까요? 시몬의 잘못된 동기를 보면서 우리는 영적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영적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믿음의 근거가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몬은 말씀에 있지 않고 그가 본 빌립의 기적에 있었습니다. 8장 1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몬도 믿고”란 표현은 그의 믿음의 동기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 주고 있는데 그것은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고자 함이 아니라 기적을 보고 그것을 행하는 방법을 알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 믿음의 동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빌립은 자기의 추종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믿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립이 나타나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고 자기 말을 들었는데 빌립의 전도를 받고 모두 그를 따르니 시몬도 자기의 추종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돈으로 성령의 능력을 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그러므로 이 악 함을 회개하라.!!!
시몬은 돈이면 자신이 필요한 것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사단의 생각입니다.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심이 무엇입니까? 오늘날 물질 만능주의가 되면서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착각하는 것이 영적인 복도 돈으로 해결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몬의 마음입니다. 영적인 복을 어떤 환경에서 누리시기를 원하십니까? 영적으로 올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우상을 섬기는 환경에서 포로로 생활하였지만 영적으로 바로 서 있었을 때 복 주시지 않았습니까?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에게 팔려 노예 생활을 하였을 그 환경에서도 영적으로 바로 서서 하나님을 경외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않았습니까? 영적으로 바로 서서 올바른 동기로 주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면 고난과 어려운 환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 고난과 어려운 환경을 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으나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안수할 때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 당시 사마리아는 유대인들과 상종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 나름대로 예배하였습니다.
빌립이 전도할 때 성령까지 받았다면 예루살렘교회와 사마리아교회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대표가 와서 안수함으로 그들이 받은 성령과 사마리아에서 받은 성령이 같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셨습니다. 성령이 임함으로 오랫동안 원수지간으로 여겼던 사마리아와 유대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가치관이 깨어지고, 그들의 생각이 깨어지고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하나가 되었을 때 어떤 역사가 있었습니까?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고,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던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수록 더욱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어야 고난을 이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고난을 축복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 될 수 있습니까? 하나 되기 위해서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성령의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 초점 맞추고 열심히 섬김으로서 하나 될 때 우리에게 어려운 환경이라 할찌라도 축복으로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목사와 성도가 하나가 되어야 하고 온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어려운 고난과 힘든 일이 온다 할지라도 그 고난을 복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7:22-23절입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남북 전쟁 때 그 미국이 남북 전쟁을 하고 있을 때 포토맥 강이라고 하는 강을 사이에 두고 북군과 남군이 대치했습니다. 이제 내일 아침에 터져서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될 그런 그날 밤입니다. 달빛이 흐르고 조용한 시간에 군사들은 불안에 떨면서 지금 하룻밤을 지내게 됩니다. 그 누군가가 생각합니다. 군가를 부르기로 하면 양군이 전부 군가가 다릅니다. 애국가를 불러도 둘 다 다릅니다. 그런데 어느 군인이 누구나 다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 Home, Sweet Home,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누구나 잘 아는 그 노래를 어느 군인이 조용하게 불렀습니다. 옆에서 따라 불렀습니다. 강 건너편에 소리가 들려졌습니다. 그 분도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로 가득 찼습니다. 저들은 눈물을 흘리며 계속 불렀습니다. 다음날 전쟁은 없었습니다. 왜요? 한 마음이 되었거든요 어떻게 전쟁을 했던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될 수 있었습니까? 근본으로 돌아가 보니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나를 오라고 하는데 나는 왜 여기서 이래야 되느냐 이거예요. 근본적인 것에서 부터 하나가 되니 전쟁이라는 이념적인 문제 가운데서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는 자신의 경험, 지식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느 시간을 좀 멀리 내다보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요. 그 종말을 바라보며 오늘 현재를 생각해 보세요. 누가누구를 비판하고 누구를 원망하고 교만 할 수가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실제거든요. 예수를 믿는다는 건 뭡니까? 믿는 순간부터 하나 됨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 같은 죄인이니까. 잘났으나 못 났으나 죄인은 마찬가지요. 우리 의로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는 다 죽을 죄인인데 오직 예수의 은혜로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예수의 은혜로 내가 살고 하늘나라를 지향합니다. 그리고 오늘을 삽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때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라 할지라도 복으로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3.나는 지금까지 고난을 어떻게 받아드렸으며 앞으로의 삶을 위해 무엇을 결단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