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 공과 2012년 8 월 24 일

스데반이 잡히다
사도행전6장8절~15절

오늘말씀에서부터 7장까지는 스데반의 활약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8) 앞서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스데반은 사도들의 직무를 덜어주기 위해 교인들이 뽑은 일곱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평신도 일군입니다. 그러나 그의 활동을 보면 사도들 못지않습니다.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습니다. 성령 충만 했습니다.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했습니다. 이것은 초대 교회 역사에서 아주 특별하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1.스데반의 활약상을 연구하여 봅시다.

오늘 말씀에서부터 7장까지는 스데반의 활약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8) 앞서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스데반은 사도들의 직무를 덜어주기 위해 교인들이 뽑은 일곱 일꾼 중의 한 명입니다. 평신도 일꾼입니다. 그러나 그의 활동을 보면 사도들 못지않습니다.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습니다. 성령 충만 했습니다.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했습니다. 이것은 초대 교회 역사에서 아주 특별하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사도행전의 방향을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성령 받은 교회는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 끝까지. 이렇게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바로 이 구분에 의해서 사도행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 부분은 1장에서 12장까지입니다. 이 부분은 크게 보면 유대 땅에서의 복음 전파입니다.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가이사랴까지. 이 부분의 주된 사역자들은 12사도들이며 그 중심인물은 베드로 사도입니다. 둘째 부분은 13장에서 28장까지입니다. 이 부분은 이방에서의 복음 전파입니다. 안디옥에서 소아시아, 마게도니아, 아가야, 로마까지. 이 부분의 중심인물은 사도 바울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사도행전의 전반부에 속해 있습니다. 크게 보면 베드로 사도가 중심이 된 12사도의 사역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다시 분석해 보면 1장에서 5장까지는 베드로 중심의 사역 장면입니다. 6장, 7장, 8장은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과 빌립의 활동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9장은 사도 바울의 회개 장면이고, 10장과 11장은 베드로에 의해서 최초의 이방인 고넬료를 전도하는 장면입니다. 이렇게 보면 6장, 7장, 8장은 그 중심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역의 담당자는 사도가 아니라 집사들입니다. 스데반은 교회사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빌립은 유대인 혈통의 한계지점인 사마리아까지 복음을 확장시킵니다. 그 사역 이후에 복음은 이방으로 향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지역에 스데반과 빌립이 놓여 있습니다. 이들은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이방 문화에 익숙합니다. 그리고 평신도입니다. 사도들과는 다른 경로로 직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사역은 사도들 못지않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활동은 단순이 재정 담당자에 머물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신유의 능력을 행하고 기적을 행했습니다. 이 모든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박해자들에게 대항하여 당당히 복음을 변론하는 변호인이 된 일입니다. 스데반은 공회 앞에서 단 한 편의 설교를 하고 그 설교 때문에 돌에 맞아 순교 당했습니다. 교회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중요한 시점에 사도가 아닌 평신도 집사가 앞장서서 공회에서 설교를 하고 순교까지 당했을까? 어떤 주석가는 반대자들이 사도들과 직접 충돌하는 것을 꺼려해서 집사를 잡아 들였다고 합니다. 다른 주석가는 스데반이 매우 유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도들의 일을 대신했다고 합니다. 스데반의 활약은 최초의 교회가 어떻게 박해를 극복하고, 세계의 교회로 발돋움 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스데반의 활동을 통해서 초기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박해자들에게 대항했는지 배워야 합니다.

2.스데반 박해의 주역은 누구며 어떻게 박해하였습니까?

스데반이 당한 박해의 주동자들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 중에서도 헬라파 유대인들입니다. 헬라파 유대인이 누구인지는 지난주에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박해자들의 출신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른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자유민이란 별명이 붙은 유대인들, 이들은 구체적으로 누구일까? 학자들에 의하면, 이들은 BC63년 폼페이에 의해 로마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의 후손들이란 설이 유력합니다. 이 당시 약 4000여명의 자유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본문에는 자유민이라고 했는데, 종전의 개역 한글판에는 “리버디노”라고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로 “Liberti’no””이며, 라틴어로는 libertinus이고 그 의미는 자유인이란 뜻입니다.
사도 시대 당시 예루살렘에는 이들이 모이는 회당이 여럿이 있었습니다. 본문에는 이들의 출신지가 네 곳입니다. 첫째는 구레네인데 지금의 리비아입니다. 둘째는 알렉산드리라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도시로, 이집트 최대의 도시였습니다. 한 때는 유대인 인구가 전체 도시의 5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유대인이 많았습니다. 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최초로 구약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셋째는 길리기아입니다.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남부 지중해에 연한 지역입니다. 길리기아는 바울 사도의 고향입니다. 아마 여기에도 유대인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넷째는 아시아인데, 지금의 터키 서부 지역으로 에베소를 중심한 지역입니다. 이들이 다 한 회당에 모이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다섯 곳의 회당에 모이는 사람들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약 480개의 회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같은 유대인이지만 출신지별로 각기 다른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헬라파 유대인들이 기독교 박해에 앞장섰을까? 그 이유는 정치적입니다. 아마 이들은 율법적인 논란보다, 기독교에 의해서 유대인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같은 유대인들이지만 보다 더 경건한 정통적인 유대인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신중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앞서 보신 대로 가말리엘이 그 대표자입니다.(행5:34) 사실 유대교와 기독교는 한 가지만 다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 메시야로 인정하는 것이 기독교이고,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유대교입니다. 가말리엘은 이점에 있어서 매우 신중합니다. 예수가 메시야인지 시간을 두고 보자! 그러나 헬라파 유대인들은 이런 신중함이 없습니다. 과격합니다. 성경이나 교리적인 관찰은 하지 않고, 오직 정치적인 입장만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순수한 종교인은 살인하지 않습니다. 항상 정치적인 종교인이 종교를 빙자하여 살인을 합니다.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이나, 사도 바울을 박해한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에 많은 시간을 유대인 회당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9:35)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회당에서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마4:23,12:9,13:54, 막1:21,39, 3:1,5:22,6:2, 눅4:15,16,20,33,44,6:6,13:10, 요6:59,18:20) 그러나 율법적인 바리새인들과는 안식일 논쟁과 같은 교리적 논쟁을 하셨을 뿐입니다. 정작 예수님을 체포하고 재판하고 못 박아 죽인 세력은 주로 사두개파, 헤롯, 빌라도와 같은 정치적 집단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이방 선교를 하면서 가는 곳마다 먼저 유대인 회당에서 설교를 했습니다.(행9:20,13:5,14,14:1, 17:1,10,17, 18:4, 19,26,19:8) 그럴 때마다 바울을 박해한 사람들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아니라 주로 정치적인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때로는 붙잡아 때리고, 가두고,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스데반 집사를 잡아 죽이려고 한 것은, 교리적인 문제보다는 이런 정치적인 동기가 더 강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종교를 박해하는 이면에는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적인 이유가 더 큽니다. 우리는 이러한 박해의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박해자들의 2단계 전략

박해자들은 두 단계의 전략을 사용합니다. 첫 단계는 논쟁입니다. 반대자들은 회당에서 스데반과 논쟁했습니다.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9) 논쟁의 주제는 아마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냐 하는 문제였을 겁니다. 이 논쟁에서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당하지 못했습니다. 첫째는 구약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해석을 유대인들이 당하지 못했습니다. 둘째는 스데반의 성령 충만한 능력에 앞도 당했습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하지 못하여”(10)
그러나 이 논쟁에 졌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았습니다. 논쟁의 약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겼다고 해도 별 소득이 없습니다. 특히 복음 전파에서 논쟁은 백해무익합니다. 논쟁은 마귀의 수법입니다. 휘말리지 말아야 합니다. 최근 SBS 방송에서 “신의 길, 인간의 길”이라는 이상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방영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 신앙을 폄하하고 이슬람교를 선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2000년 간 믿어 온 종교요, 현재에서 수십억의 인류가 믿고 있는 신앙의 도리를 난도질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짓입니다. 어디서 신앙 없는 자유주의 신학자들만 교묘하게 인터뷰해서 만든 의도된 작품입니다. 이런 천박한 방송과는 논쟁하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논쟁을 만들어 세인의 관심을 끌려는 전략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현명한 대응입니다. 앞으로 이런 방송을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마세요. 저는 앞으로 이 방송을 안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다 안 보면 그만입니다.
개인전도 역시 논쟁을 피해야 합니다. 논쟁 때문에 시간과 힘을 빼앗깁니다. 논쟁하려는 의도가 믿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논쟁에 이긴다고 전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논쟁에 진 사람이 예수 믿는 것 봤습니까? 졌으니까 기분 나빠서 안 믿어요. 논쟁은 마귀의 수법입니다. 마귀는 가만히 있는 하와에게 찾아와서 논쟁을 벌였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동산 중앙에 있는 과실을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 뻔한 얘기를 가지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결국은 마귀의 작전에 하와가 휘말렸습니다. 마귀는 멀쩡한 욥을 놓고 하나님과 논쟁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을 이길 수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논쟁을 하는 것이 마귀입니다.
요즘 사회적인 이슈들을 놓고 논쟁이 치열합니다. 생산적인 논쟁보다는 자기 의견만을 내세우는 일방적인 논쟁이 대부분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논쟁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관철하려는 논쟁이기 때문에 결과가 없습니다. 말은 많은데, 열매가 없는 논쟁이 오늘날 세상에 가득합니다.
둘째 단계는 거짓과 폭력입니다. 논쟁에 졌을 때 박해자들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악한 방법으로 대항해 왔습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하지 못하여,(10)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득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11-14) 그들은 사람들을 매수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은 30냥에 예수님을 판 것처럼 거짓 증인들이 돈에 진리를 팔았습니다. 그들은 거짓 증언으로 스데반이 체포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스데반을 체포했습니다. 공회를 열어 정치 재판을 했습니다. 거짓 증인들로 거짓 증언을 하게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성전을 헐고, 율법을 고치겠다고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의 죄목과 똑같습니다. 성전 모독죄와 율법 모독죄! 예수님이 말씀한 성전은 부활하실 자기 육체를 가리킵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율법 부분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을 폐하거나 없애겠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말씀을 왜곡했습니다. 오직 예수님과 그 추종자들을 죽이기 위해!
목적이 정해진 폭력입니다. 과거의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캄보디아에서, 현재의 북한에서. 지금 우리가 받는 도전도 마찬가집니다. 교회를 향한 악의적인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 교회가 끼쳐 온 선량한 역할들을 애써 외면합니다. 그리고 오직 헐뜯고 폄하하는 데만 열심을 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단의 전략을 정면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물론 교회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부족한 면이나, 실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교회의 부족함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처럼, 부족한 것을 바로잡아 가십니다. 징계를 하시든지, 연단을 하시든지.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수단으로 움직이려고 합니다. 아무튼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스데반처럼 사단의 계획적인 공격을 이겨야만 합니다. 세상의 도전을 이기는 교회, 그 선봉에 서 있는 정윤 가족이 되시기 바랍니다.

3.스데반 순교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스데반 사건의 가장 큰 의미는 복음이 유대교와 충돌하고, 그 장벽을 넘어섰다는 점입니다. 유대교는 성경의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구약을 믿고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메시야가 왔을 때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메시야 없는 율법의 종교로 남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취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메시야는 반드시 나타나야 됩니다. 그리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야를 거부하는 유대교와 메시야를 인정하는 기독교는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는 필연적으로 유대교를 넘어서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만 복음이 전 인류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 사건은 바로 이런 의미 있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몇 단계의 장벽을 넘어섰습니다. 첫 단계는 앞서 말씀드린 유대교의 장벽입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했고, 야고보 사도는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사도들은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들고 가는 곳마다 유대인 회당에서 가르쳤고, 또한 유대인들의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그러나 결국 복음은 유대인을 넘어서 이방을 향했습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19:8-10)
두 번째로 부딪친 장벽은 로마 제국의 황제들입니다. 로마 황제들은 약 300년 가까이 집요하게 교회를 탄압했습니다. 네로 황제는(AD64), 로마 시에 불을 지르고 그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덮어씌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그리스도인을 산채로 태워 자기 정원을 밝혔습니다. 바울과 베드로 사도 역시 이 시기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도미시안 황제는(90-96), 로마와 소아시아 지역에서, 황제숭배 거부 자들을 박해했습니다. 로마의 클레멘트가 순교하고, 사도 요한 밧모 섬에 유배 된 것도 이 시기입니다. 트라얀 황제는(98-117), 기독교인을 애국심 없는 집단으로 매도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죽이라고 했습니다. 이그나시우스를 비롯한 다수의 지도자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스토아 철학에 심취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161-180), 기독교에 반대하며 자연재해의 책임까지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렸습니다. 져스틴이 이 시기에 순교했습니다.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는(202-211),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레니우스가 순교했습니다. 막시미누스 황제는(235-236), 기독교 성직자를 처형시키도록 했습니다. 히폴리투스가 순교했습니다. 데키우스 황제는(249-251), 박해를 로마제국 전체로 확대시켰습니다. 황제 숭배를 강요하고, 기독교 척결하라고 했습니다. 발레리안 황제는(257-260), 그리스도인들의 재산을 몰수하도록 하고, 그리스도인의 모든 집회권을 박탈했습니다. 이 시기에 오리겐, 키프리안 이 순교했습니다. 디오클레시안 황제는(303-311), 로마 시대 최후 최악의 박해자였습니다. 교회를 파괴하고, 성경을 불태웠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권리 유보시키고, 로마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칠 것을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황제들의 집요한 박해를 이겼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참수를 당하고, 화형을 당하고, 돌에 맞아 죽고, 사자 밥이 되고, 십자가형을 당했습니다. 무려 300여 년을 지하 동굴에 살면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최악의 박해자 디오클레시안 황제의 박해가 끝나고, 드디어 콘스탄틴 황제 시대가 되었습니다. 콘스탄틴 황제는 유명한 밀라노 칙령을 통해서 기독교를 공인합니다. 드디어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 나아가서 세계의 종교가 되게 되었습니다. 역사적 고비마다 교회는 박해의 장벽을 넘어섰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 새로운 장벽이 생겼습니다. 불신 언론의 장벽, 다원주의 문화의 장벽, 악랄한 선동자들의 장벽 등등.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것은 만들어 내는 것은 마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귀와의 싸움에서 최선봉에 서 있습니다. 마귀와의 싸움에는 중립 지대가 없습니다. 이기든지 지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기면 살고 지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스데반처럼 용기 있게 도전의 장벽을 넘어서시기 바랍니다.

스데반은 영광의 빛으로 가득했다

복음을 들고 유대인의 장벽을 넘어선 스데반입니다. 그는 교회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박해자들 앞에 서 있는 스데반, 순교를 앞둔 스데반, 그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15) 하나님은 그에게 천사의 영광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얼굴은 돼지기름이 줄줄 흐르는데, 영적 투쟁력은 없는 무기력한 모습은 아닌가요? 스데반처럼 평신도지만 사도 이상으로 능력을 가진 성도가 되세요. 복음을 들고 민족의 장벽을 뛰어 넘는 전도자가 되세요. 매 순간 하늘의 예수님을 목격하는 영안이 열린 자가 되세요. 자신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라고 외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세요. 그런 스데반에게 하나님은 천사의 영광을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