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 공과 2012년 6 월 1 일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사도행전2장14절~42
베드로 설교의 핵심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인데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고 하면 구원을 받으라고 외쳤습니다.
1. 베드로 설교의 목적은 무엇 입니까?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유대인들에게 베드로가 행한 첫 번째 설교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하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셔서 온 세상의 주인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주님이시기에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라”하는 것이 베드로 설교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베드로가 이 설교를 언제, 무엇 때문에 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설교를 한 시점은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신 다음입니다. “강하고 급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듣고 몰려든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이 들었던 것은 사도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말한 방언이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갈릴리 사람들인데 외국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할 수 있는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들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그들이 말하는 “방언”은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말하는 방언을 폄하에서 말하기를 아침부터 술을 먹고 취해서 흥얼거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듣고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사도들이 일어나서 담대하게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여! 우리가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들어보십시오. 우리들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침부터 술을 먹고 취해서 흥얼거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지금은 아침 9시쯤 되지 않았습니까?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보고 들은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테니 귀를 기울여서 내 말을 잘 들어 보십시오”
이렇게 말하면서 베드로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들이 말한 방언을 새 술에 취해서 흥얼거리고 있다는 오해를 없애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15절과 16절을 주목해 보십시오.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여러분, 베드로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사용한 방식을 주목해 보십시오. 흥미롭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놀라고, 의심하고, 어리둥절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사람들이 사도들을 비롯한 사람들을 향해서 “새 술”에 취했다고 비아냥거리는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이 들었던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때문인가요? 아닙니다. 그들이 비아냥거렸던 이유는 사도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말한 방언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들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잘못 들었나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들 귀에 들리는 소리는 이상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소리가 아니라, 자신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 언어였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놀라고, 의심하고, 어리둥절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방언은 체험입니다. 경험입니다. 우리가 한 경험과 체험에 대해서 묻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경험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는지, 그런 경험을 했을 때 느낌은 어떠했는지, 그런 경험을 한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가 한 경험을 설명하려면 우리가 한 경험의 과정과 내용을 소상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간증이라는 것을 들어보십시오. 대부분 자신들이 한 경험을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베드로는 어떻게 접근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했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어떻게 시작하고 있습니까? 구약성경에 기록된 요엘 선지자가 전한 말씀을 갖고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베드로가 자신이 한 경험이나 체험을 이야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령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식으로 오신 이유, 자신들이 천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게 된 것이 단지 개인이나 몇 몇 사람들이 어쩌다가 한 신기한 경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수 세기 전에 요엘이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예언이 바로 지금, 오순절에 이루어진 것이다 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행한 방식이 바로 복음의 종교인 기독교가 갖고 있는 독특성입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교회에 다니십니까?”, ”무엇 때문에 예수를 믿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 대답을 합니까?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얻게 되는 유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마음이 평안해진다든지, 염려와 걱정과 불안이 사라진다든지, 기도를 했더니 소원이 이루어졌다든지, 기도를 하는데 내 몸이 갑자기 뜨거워지고, 환상을 보게 되었다든지,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합니다.
경험과 체험은 그 경험을 한 당사자에게 유익을 줍니다. 열심이 없다가 어떤 체험을 하게 된 다음에는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확신을 갖지 못했다가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되면 확신을 갖고 되고, 담대해집니다. 그러나 경험과 체험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경험과 체험 자체가 복음이 될 수 없고,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복음의 종교인 기독교는 경험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일어난 사실을 다루고, 진리를 다룹니다. 오랜 세월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어떻게 이 땅, 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경험과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 즉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즉흥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 드러나고, 분명해지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아무런 결과도 만들지 못하고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 하나님의 오심을 설명하면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수 세기 전에 요엘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오순절에, 자신들에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자신들이 한 방언을 듣고 놀라고, 의심하고,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람들, 자신들을 향해서 “새 술”에 취했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에게 확증시키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들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그 성경은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성경은 이 세상에서의 삶과 저 세상의 삶을 결정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그 성경을 떠나서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그 성경을 떠나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그 성경을 펴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려면 그 성경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 성경을 끊임없이 읽고, 묵상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를 다스리고, 인도하고, 가르치고, 깨닫게 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견고하게 붙잡을 때 삶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의의 길로, 은혜의 길로, 영광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삶 한 가운데서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2.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의 예언은?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 선지자의 예언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선,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께서 오셨다는 사실이 “말세, 시대의 마지막”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7절에서 베드로는 “말세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말세란 말 그대로 마지막 때입니다.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께서 오셨다는 사실이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좀 더 넓게 이야기를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심과 승천하심,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께서 오신 일련의 사건이 바로 마지막 때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말세에”라는 단어를 쓴 것이 아니라 “그 후에”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요엘 선지서 전체의 내용을 살펴 볼 때 베드로가 “그 후에”라는 말을 “마지막 날에”라고 번역한 것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라고 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연상이 됩니다. 오늘 본문 19절과 20절을 보십시오. 매우 암울합니다.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될 것입니다. 하늘이 말리고, 땅이 녹을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쓴 베드로 후서 3:10절 이하에서 마지막 날에 벌어질 사실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베드로는 그 “마지막 날”이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께서 오심으로 시작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의 특징이 무엇인가? 베드로는 오순절에 오신 성령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 위에 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무슨 말입니까? 성령 하나님의 부어주심은 나이의 구분이 없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성령 하나님의 부어주심은 신분의 구분이 없이, 남, 녀의 구분이 없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께서 오셨을 때, 사도들에게만 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그 곳에 모였던 모든 사람들에게, 각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오순절 성령 하나님께서 오심은 인간이 구분해 놓은 차별과 구별을 철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은 담을 허물어버렸듯이, 오순절 성령 하나님께서 오셔서 행하신 것은 바로 모든 육체에게,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성령 하나님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지막 때” 시작을 알리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예언, 환상, 꿈”이란 요엘 선지자가 사역했던 구약 시대에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예언과 환상과 꿈”이란 그 시대에 어떤 기능을 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줄 뿐 아니라 “예언과 환상과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가 전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전달하는 수단이 바로 예언, 환상, 꿈입니다. 우리의 꿈과 환상이, 우리가 예언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시가 되려면, 거기에 반드시 계시의 성격과 내용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신비하고, 신기한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이 주셨다. 하나님께서 꿈으로, 환상으로, 예언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계시의 성격과 내용이란 바로 그 앞과 그 뒤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에 주신 계시와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동떨어진 것이라면 하나님의 계시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체험이나, 개인적인 유익이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곧 하나님의 계시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오셔서 모든 사람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셔서 행하신 일은 하나님의 계시를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계시의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오셔서 행하신 일은 구약시대에 감추어졌던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 그리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구주요, 그리스도, 즉 대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이시라는 사실을 충만하게 세상에 드러내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구원의 복음이 구약시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온 세상에 충만하게 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의 계시는 어느 특정한 한 두 사람, 또는 특정한 부류의 몇 몇 사람들만이 독점적으로 받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남, 녀, 노, 소, 신분의 구분이 없이 성령 하나님을 부어주시는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나고, 선포되고, 전달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실이 뚜렷하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볼 때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전파와 그 복음 전파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은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베드로가 인용하고 있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구조는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말씀과 동일합니다. 마태복음 24장에 가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게 될 “마지막 날”이 가까오면 세상에 기근과 난리가 심해질 것이요, 전쟁과 재난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이변이 크게 생길 것이요, 불법이 심해지고,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심하게 발생할 경우 세상의 끝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고 세상의 끝이 온 것이 아니라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것과 구조가 동일합니다. 성령의 오심, 재난과 기근과 전쟁과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짐,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 그리고 오게 되는 것이 바로 역사의 끝, 세상의 종말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때는 세상의 끝자락입니다. “마지막 때”를 향해서 세상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 더욱 악해질 것이고, 지금보다 더욱 불법이 심해질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욱 재난과 전쟁과 기근과 천재지변과 이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성령 하나님의 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전 세계를 향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지금보다는 더욱 놀라운 속도와 범위로 온 세상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힘써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외치고, 보여주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자명한 것 아닙니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가 가장 힘써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임하셨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1:8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증인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까? 말로 전하고, 몸으로 보여주고,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를 보라. 예수만이 세상의 소망이다. 예수만이 구원이다. 예수만이 “마지막 때”를 향해서 나아가는, 파멸을 향해서 나아가는 세상에서 구원을 얻는 길이다. 이것을 외치는 것이 증인의 삶이요, 성령 하나님께서 오셔서 권능을 주신 이유가 아닙니까? 사도행전 2:37 절에 기록된 베드로 설교의 결론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지, 왜 부활하셨는지, 무엇 때문에 지금도 살아 계셔서 크신 능력과 권능으로 교회를 붙들고 계시는지, 무엇 때문에 성령 하나님께서 오셨는지, 무엇 때문에 성령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고 계시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확한 증언을 갖고 있느냐? 라는 물음입니다.
교회는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염려와 걱정과 불안을 없애주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해서 자기만족을 주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시는 구원을 선포하고, 증거하고, 확증하기 위해서 이 땅에 서 있는 것입니다. 심리적인 안정과 마음의 위로와 평안,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그리스도 예수만이 구원자임을 알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망각하고 우리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만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교회는 이 세상에서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에게 주신 고유하고 독특한 능력은 상실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들이 무엇 때문에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서 우리가 살아야 하는지를. 하나님의 구원의 통로로 존재하는 것이요, “마지막 때”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현실에만 급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메시지와 구원의 은총을 전달하기 위해서, 세상을 향해서 활짝 열려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을 전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그런 자리로 부르신 성령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살 수만 있다면, 성령 하나님은 크고 놀라운 일을 하실 것입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총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곳이 바로 선교의 현장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온 몸과 전체의 삶을 통해서, 하루하루의 일상의 삶을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세상의 구원자 되심을 증거하고, 선포하고, 확증하고 살아야 하는 증인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 주심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힘 있게 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우리도 성령 받기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