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 공과 2012년 12월 14일

바나바와 사울이 구브로에서 전도하다
사도행전13장1절~12절

안디옥이라는 국제적인 도시에 몇 명의 도망자들이 세운 교회가 안디옥 교회입니다. 아주 초라하고 미약한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안디옥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의 뒤를 이어 초대 교회사에 중요한 획을 긋는 위대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1. 안디옥 교회의 특징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1절에 안디옥교회의 다양한 일꾼들을 소개합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여기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교회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교회는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교회에는 사도들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평신도 지도자들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 안디옥 교회의 평신도 지도자들은 다양한 신분과 민족과 계급을 초월한 일꾼 들이었습니다. 이미 주안에서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하나”된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여기 안디옥교회에 모인 일꾼들을 보면 백인도 있고 흑인도 있었습니다. 노인도 있었고 젊은이도 있었습니다. 여기 소개되는 평신도 일꾼들을 보면 아주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선 바나바라는 일꾼이 있습니다. 이미 바나바는 행11:24“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큰 부자였습니다. 사울과 더불어 안디옥교회에서 중추적인 일꾼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다음에 니게르라는 일꾼이 소개됩니다. 이 사람은 니그로우 즉 흑인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간 구레네 사람 시몬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애매한 고난을 당하고 그는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으로 인생이 변한 것을 봅니다. 세 번째가 구레네 사람 루기오 입니다. 이 사람은 북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으로 추정됩니다. 네 번째가 분봉 왕 헤롯의 동생 마나엔입니다. 그당시 분봉 왕 헤롯과 함께 어린 시절 자란 사람으로서 안디옥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가 사울입니다. 길리기아 다소 출신의 사울은 나중에 바울로 개명을 합니다. 그는 바로 안디옥 교회의 좋은 일꾼으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소개되는 안디옥 교회 일꾼들을 보면 나이가 많은 바나바에서부터 시작하여 나이가 작은 사울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넘어서서 다양한 일꾼들이 모여 있습니다. 또 백인도 있었고 흑인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안디옥 교회는 평신도 일꾼으로 세웠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성령의 음성을 알아듣고 시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성령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증인이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다 알 수 있는 것 입니다. 성령이 무엇 때문에 부르시겠습니까? 성령이 시키려는 일이무엇이겠습니까? 복음의 증인으로 세워 복음을 증거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은 막연한 것이었지만 안디옥 교회는 그 음성을 알아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아는 교회였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기 전부터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설립자들은 복음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았지만 아직도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나를죄에서 구원하신 것을 믿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는동안 주를 위해 살겠다고 헌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사명이었고 안디옥 교회의 분명한 목표였습니다. 사명과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그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위대한 사명에 충성하는 교회였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사실 제자들도 처음에는 이 사명의위대함을 깨닫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겨자씨 만 한 선언이 얼마나 큰 나무가 되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 위대한 비전과 사명에 충성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기둥과 같이 중요한 바나바와 바울을 이 사명을 위해 바쳤습니다. 우리가 위대한 삶을 사는 길은 위대한 사명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고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충성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는 충성을 다한 교회였습니다.

2. 바나바와 사울의 전도여행 행선지에 대한 설명과 그곳에서 거둔 복음의 열매에 대하여 설명하여 보시오.

전도여행을 요약하면 크게 두 지역입니다. 첫째는 구브로 섬이고 둘째는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내륙입니다. 본문은 바울의 첫 번째 전도 여행 중에서도 첫 번째 부분으로, 구브로 섬에서의 전도활동입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4-6) 구브로 섬은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입니다. 첫 번째는 시칠리아(25,708㎢), 두 번째는 사르데니아(24,089㎢), 세 번째가 키프로스(9,250㎢), 네 번째가 크레타(8,247㎢) 섬입니다. 구브로 섬은 현재의 키프로스 섬입니다. 키프로스는 동서 길이가 약 148마일(약240km), 남북 길이는 15-20마일(24-32km) 정도 되는 길쭉한 섬입니다. 면적은 남한 면적의 약 10분의 1쯤 되고, 현재 인구는 약 80만 명쯤 됩니다.
그러면 바울과 바나바는 왜 구브로 섬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했을까요? 몇 가지 이유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바나바와의 연관성입니다. 첫 선교지를 아주 생소한 곳으로 정하는 것보다는 내막을 좀 아는 지역으로 하는 것이 낫습니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며, 안디옥 교회에도 구브로 출신들이 있었습니다. 구브로 다음의 행선지를 바울의 고향인 길리기아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둘째로, 지리적 요인입니다. 구브로는 지중해 동부에 있는 해상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팔레스틴 지역에서 동서 방향으로 가든지 남북 방향으로 가든지 구브로는 바다를 거쳐가는 길목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아시아로 가면서 육로가 아닌 해로를 택했습니다. 이것이 구브로를 거치게 된 이유입니다. 또한 교통의 요지에서 전도하면 복음이 퍼져나갈 것도 예상했을 겁니다. 셋째로, 유대인과의 연관성입니다. 구브로에는 상당한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고 회당도 여럿이 있었습니다. 먼저 성경을 아는 유대인을 상대하는 것이 복음의 문을 여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안디옥을 출발한 바울과 바나바는 배를 타고 서남쪽 방향으로 약 130마일(약200km)을 항해하여 이 섬의 동쪽에 있는 살라미에 상륙했습니다. 그리고 살라미로부터 바보까지 약 170km를 내륙으로 西進하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살라미는 바울 당시에 구브로 섬 최대의 도시였습니다. 구브로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 되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구브로는 깃딤(창10:4)이란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역사가 오래 된 만큼 우상 숭배도 오래 되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PAPHIAN 여신을 섬겼습니다. 파피안은 시리아에서 유래된 신으로 그리스 사람들이 섬기던 아프로디테와 같은 신입니다. 살라미는 항해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상업이 발전했고, 상업이 발전된 곳에는 항상 그랬듯이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바울은 이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서 전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어느 도시에 가든지 거기에 유대인들이 있으면 반드시 먼저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마음에는 언제나 동족을 전도하려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는 곳마다 듣든지 안 듣든지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에게 먼저 전도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전도 원칙은 2차, 3차 선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살라미에서 점점 서쪽으로 진행한 바울은 마침내 바보라는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바보(BAFFO)는 섬의 서쪽에 있는 도시로, 현재의 크티마란 도시 근방에 있습니다. 바보에는 총독의 관저가 있었고, 여기서 유명한 서기오 바울을 전도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총독 서기오 바울이 예수를 믿게 됨

사울이 바보에서 전도할 때에 총독 서기오 바울(SERGIUS PAULLUS)이 복음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6-7) 서기오 바울에 대한 역사상 명칭은 LUCIUS SERGIUS PAULLUS입니다. 그는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절 TIBER 지역의 CURATOR였다가 구브로 섬의 총독(PROCONSUL)으로 파송받은 사람입니다. 총독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휘하에 군대를 둔 총독을 PROPRAETOR이라고 했고, 그렇지 않는 총독을 PROCONSUL이라고 했습니다. 서기오 바울은 후자의 경우입니다. 구브로 섬이 로마에 합병된 것은 BC57년경입니다. 그 후 BC22년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구브로를 로마의 원로원 아래 두도록 했고, 같은 해 PROCONSUL(총독)을 파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서기오 바울이 누구였는지 별다른 기록은 없습니다. 플리니의 기록에 의하면 서기오 바울은 문학가였다고 합니다. 상당히 지혜롭고 참 신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원로원 의원을 뽑을 수 있는 자격을 가졌던 사람인 것을 보면 정치적인 역량도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기오 바울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보면 바울과 바나바의 구브로 전도활동에서 서기오 바울이 예수 믿게 된 것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브로 선교에서 다른 열매는 없었는지? 다른 사람들도 믿게 되었지만 서기오 바울이 믿게 된 것이 특이하기 때문에 기록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서기오 바울이 예수 믿게 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를 두 가지로 봅니다.
첫째로, 복음에 관심을 가진 자가 결국은 예수님을 영접케 된다는 사실입니다. 관심은 중요합니다. 관심이 있는가, 없는가? 관심이 있으면 듣고, 관심이 없으면 듣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 중국 심양을 방문했을 때, 어떤 처소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평일임에도 외국에서 목사님들이 오셨다고 하니까 많은 교인들이 찾아왔어요. 밭에서 일하던 사람들까지, 믿는 사람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관심이 있으니 말씀을 듣고, 말씀을 들으니 주님을 믿게 됩니다. 지금 네팔에서 거리 전도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듣습니다. 관심이 있습니다. 요즘 서울 거리에서 전도해 보세요. 별 희한한 짓을 다 해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살기에 바빠서 관심이 없어요. 관심 없으면 듣지 않습니다. 총독 서기오 바울은 복음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당대의 지식인이요, 권력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지 않고 복음을 알고자 했습니다. 관심 있는 사람에게 전하세요. 전도의 제1원리입니다.
둘째로, 그 지역의 최고 지도자를 전도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바나바와 바울의 구브로 전도는 별다른 열매가 없어보입니다. 겨우 한 사람 전도에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구브로 섬 최고의 권력자인 서기오 바울이 예수 믿게 됨으로써, 나타날 결과들을 상상해 보세요. 로마 제국에 처음 복음이 전파될 때는 황제들의 박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정치권력이 종교를 박해하면 오늘날 회교권과 같이 됩니다. 복음 전파의 문이 막혀버립니다. 반대로 콘스탄틴 황제가 예수님을 믿게 됨으로써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복음이 자유롭게 전파되는 것은 물론 기독교 정신이 국가의 통치 이념이 되었습니다. 지도자가 믿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울은 신앙이 없어서 하나님께 쫓겨났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잘 믿음으로 왕국이 안정되고 백성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교회가 힘을 얻고, 복음 전파의 문이 열리고, 백성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는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 힘써야 됩니다. 바울은 지도자급의 사람들 앞에서 전도를 힘썼습니다. 회당장, 천부장, 총독 벨릭스, 총독 베스도, 헤롯 아그립바, 그리고 로마 황제까지. 오늘 내가 전도해야 될 영향력 있는 지도자는 누구입니까? 내가 속한 직장의 장입니까? 가문과 문중의 어른입니까? 아니면 각종 모임의 회장입니까?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중요 인물입니까? 그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주님을 알게 된다면 참으로 도전해 볼 만 한 일입니다. 특히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주저 말고 집요하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 믿으면 그 집이 믿게 됩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3. 복음의 훼방꾼을 설명하고 두 전도자들은 그를 어떻게 대처하였습니까?

바울이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전도할 때에 바 예수란 유대인이 훼방했습니다. “이 박수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8) 바울은 이 훼방을 기적으로 제압하고 전도에 성공했습니다. 복음 전도에는 반드시 훼방이 나타납니다. 마귀는 자기가 지배하던 영혼이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을 악착같이 방해합니다. 절대로 그냥 놔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훼방을 반드시 이겨야만 영혼 구원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먼저 훼방자 바 예수가 누군지 봅시다. 바 예수란 예수의 아들, 혹은 여호수아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그는 유대인입니다. 본문은 그를 박수(mavgo”, 마술사) 혹은 거짓 선지자(yeudoprofhvth”, a false prophet)라고 표현합니다. “!Eluvma””(엘루마)란 표현은 아랍어로 ALIMUN(wise, learned)의 뜻이며, 아람어로는 powerful의 뜻인데 자칭 지혜자요, 현자로 행세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상 귀신들린 사람이었습니다. 누가가 그를 거짓 선지자라고 한 것은 예언이 맞지 않고 틀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운 예언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는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마술사였습니다. 학자들은 그가 조로아스터 교나, 애굽의 마술사에게 마술을 익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는 성경을 외우는 유대인이었지만 하나님 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마술로써 총독의 관심을 끌고 총독의 힘을 빌리던 사기꾼입니다. 그러니 그가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놔 둘리 없습니다. 총독이 예수를 믿으면 자신의 마술이 탄로 날 것이고, 그러면 총독 곁에서 쫓겨날 것이 뻔합니다. 그는 온갖 방법으로 총독이 복음을 듣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런 훼방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바울 역시 영적인 능력을 행사합니다. 귀신의 역사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대항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힘으로 제압할 수는 없어요.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9-11) 바울이 말씀을 선포할 때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바 예수의 눈이 어두워져서 얼마 동안 소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고 헤매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총독 서기오 바울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울의 기적이 어떻게 나타났나 하는 점입니다. 물론 기적이 어느 때나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뜻대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적어도 바울이 기적을 일으킨 과정을 알 필요는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이란 이름에서 기적이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바울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바울이란 이름이 나타나고 이후로는 오직 바울이란 이름만 사용됩니다. 바울이란 이름을 사용한 것이 바울 본인의 뜻이었을까요? 아니면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의 뜻일까요? 아마 바울 본인의 뜻이었을 겁니다. 바울은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인 동시에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입니다. 유대식 이름은 사울입니다. 바울은 출생시부터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로마식 이름도 있었습니다. 그 이름이 바로 바울입니다. 로마인들은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의 긴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첫째 이름은 PRAENOMEN라고 합니다. 둘째 이름은 이방식으로 NOMEN GENTILE이라고 합니다. 셋째 이름은 COGNOMEN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GAIUS JULIUS CAESAR에는 이 세 가지 이름이 들어 있습니다. 바울 자신이 이 이름을 선호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란 이름과 첫 번째 기적이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 앞에서 작아진 바울의 모습입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자기가 작아져야 합니다. 바울의 전무후무한 기적의 전도자입니다. 그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이란 이름에 들어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놀라운 비밀을 공개합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11:30)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 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믿음의 원수는 교만입니다. 내가 주님보다 크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주님보다 위에 있기 때문에 주님이 역사하지지 않으십니다. 내가 주님보다 더 아는 척하니까 주님이 굳이 알려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능력 있는 척 하니까 주님이 능력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바울이 작은 자가 될 때에 주님의 손이 바울 위에 나타나셨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주님 앞에서 내 자신을 작게 만드세요. 겸손히 주님만 의지 할 때에 주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둘째는 성령 충만과 말씀의 선포입니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역사합니다. 성령 충만 없이 말씀이 전파되면 머리통만 커지고 능력은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성경공부는 많이 해서 아는 것은 많은데 능력이 없어요. 무기력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 충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반대로 말씀 없는 성령 충만도 없습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로로 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하여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선포입니다. 선포는 설명이 아닙니다.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선포하세요. 바울은 주님의 이름으로 바 예수, 박수 엘루마에게 선포합니다.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10-11) 이 말씀은 단순한 심판의 선포가 아닙니다. 박수 엘루마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평가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로, 엘루마는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엘루마입니다. 자칭 지혜자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사리사욕을 채우는 간사한 자였습니다. 둘째로, 엘루마는 마귀의 자식입니다. 그는 유대인으로 하나님 백성으로 자처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귀신에게 사로잡힌 마귀의 자식입니다. 셋째로, 엘루마는 의의 원수이고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자였습니다. 예언자도 아니면서 예언을 했고, 하나님이 주시지도 않은 말씀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전하는 것, 복음 전파를 방해했습니다. 참 선지자라면 메시아를 알아보았을 것이고, 당연히 복음 전파를 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을 가로막았습니다.
바울의 선포는 준엄했고 그 선포대로 엘루마는 눈이 멀었습니다.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9-11) 이것은 주님이 바울과 함께하신다는 증표였습니다. 총독 서기오 바울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 주저 없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선포합시다. 설명하려 하지 말고 선포하세요. 사단아 물러가라! 예수 그리스도는 구주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복음에 관심 있는 영혼이 듣게 됩니다.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천국이 확장됩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됩니다. 오늘도 복음이 필요한 사람에게 담대하게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구원의 역사들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