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 공과 2012년 11월23일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
사도행전12장1절~19절

초대교회가 성령의 역사로 부흥하자 사단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을 시작합니다. 사단이 먼저 선택한 방법은 핍박이었습니다.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고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베드로를 죽이려고 헤롯의 마음을 격동시킵니다. 헤롯은 베드로를 죽이기 위하여 그를 잡아 감옥에 가뒀습니다. 교회는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천사는 깊이 잠든 베드로를 깨워서 감옥에서 나가게 하였습니다. 본문의 내용과 비슷한 사건이 중국선교역사에도 있었습니다. 중국 선교사 포펜은 40년 동안 중국선교 사역을 마치고 귀국하려고 준비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중국 당국에 의해서 체포되었습니다. 중국 정부는 그를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공개재판을 했습니다. 죄목은 국가반역죄였습니다. 포펜이 사형언도를 받고 감옥에 갇혀있는데 본국 후원교회에서 그 소식을 듣고 온 교우들이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사형 집행이 되는 전날 밤에 잠들어 있는 포펜을 누군가가 깨웠습니다. 그러더니 “따라 오시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도 묻지도 마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보낸 사람인 줄로만 생각하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딘지 모르게 데리고 가서는 곧장 똑바로 가라는 것입니다. 한참 가다보니 바닷가가 보이고 거기 배 한 척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포펜은 그 배를 타고 홍콩을 통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간증을 남기고 있습니다.

1. 오늘 공부할 말씀에 나오는 사단의 역사는?

우리는 오늘1절~4절의 말씀 사건을 통해서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단의 계략을 봐야 합니다. 모든 일을 깊이 살펴보면 그 일의 배후에 영적인 세력 간의 충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 편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으며 핍박 자들 배후에는 사단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존재하시는 것처럼 사단도 존재합니다. 흔히 사단의 역사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관한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사단이 초대교회를 공격했던 이유는 영적 생명력 때문입니다. 초대교회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생명력이 예루살렘을 변화시키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드리고 그리스도에게 굴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초대교회가 영적인 능력을 상실하고 무능력한 상태에 있었다면 사단은 초대교회를 건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영적 생명력이 사단을 긴장하게 만들었고 긴장한 사단은 헤롯을 움직여서 교회를 공격했던 것입니다.

사단이 헤롯을 통해서 교회를 공격하는데 먼저 목회자를 표적으로 삼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단은 사람들의 심리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방법을 어느 정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지도력에 의하여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지도자가 없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하기 때문에 지도자를 공격하여 무너뜨리면 그 지도자의 지도를 받던 사람들은 흩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흥왕 시키실 때 백성들보다는 지도자에게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국가의 지도자 한 사람이 바로 서면 국민이 바로 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부흥은 올바른 지도자의 배출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사단은 이런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방법을 알았기 때문에 지도자를 무너뜨리려고 했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소망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우 중에 한 사람이 타락한다면 그에게는 불행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의 타락 때문에 교회가 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담임목사가 타락한다면 교회는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사단은 목사를 표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사단은 헤롯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읽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치가로서 다수가 원하는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의 요구에 의해서 베드로를 옥에 가뒀습니다.

목회자를 가두는 사단의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헛소문이나 목회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 그리고 목회자를 향한 닫힌 마음과 같은 것도 성도들의 마음에서 목회자를 가두는 사단의 역사입니다. 목회자에게 닫힌 마음을 가진 사람의 귀에 아무리 좋은 말씀, 깊은 진리가 선포되어도 그에게는 이미 닫혀 있기 때문에 영혼까지 전달이 안 됩니다. 사단은 목회자의 대인관계를 닫아버리고, 건강을 공격하고, 실망감으로 비전을 상실하게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목회자를 가두고 있습니다.

2. 교회의 기도가 베드로에게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5절 베드로의 투옥은 교회에 위기였습니다. 그 위기 상황에서 교회가 한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했던 이유가 몇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교회가 위기를 당할 때 그 위기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도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자신들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신들의 힘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릅니다.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지만 스스로 할 수 있으면 하나님을 놔버리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활용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교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천사가 베드로를 찾아가자 쇠사슬이 풀리고 쇠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기도를 통해서 묶인 것을 풀고 닫힌 것을 열어주십니다.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뮬러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무려 5만 번 이상이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가 돌본 고아원만 해도 9,975명이었습니다. 그는 그 고아원을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운영을 했습니다. 그가 기도하면 기적같이 따뜻한 도움의 손길들이 고아원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고아들을 돌볼 수 있었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그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원래 죠지 뮬러의 성장기는 불행했습니다. 그는 어려서 집에 있는 물건들을 훔치는 좀도둑의 기질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신앙으로 키워보려고 온갖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16살에 교도소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도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교도소를 나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면서 기도하기를 시작했고, 그 기도가 죠지 뮬러의 인생을 고아의 아버지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복음과 기도의 능력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특히 합심기도의 위력은 엄청납니다. 그들의 합심기도가 하나님을 일하게 하셨고, 천사를 움직였고, 환경을 바꿔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중보기도의 능력을 알기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우리들이 드린 기도가 얼마나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는지를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중보기도는 교회와 목회자에게만 능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위한 중보기도, 가정의 대소사를 위한 중보기도도 동일한 능력이 있습니다.

중보기도의 능력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일본의 한 여학교 기숙사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강도는 그 방에 값나갈 것을 다 챙겼습니다. 그리고 나가려는데 한 여학생이 “아저씨, 중요한 것은 다 가져 가면서 가장 중요한 저 책은 왜 안 가져가요?”라고 하며 한 낡은 성경을 가리켰습니다. 도둑은 그 책도 집어넣었습니다. 그 도둑은 훔친 물건들을 파는데 그 책은 아무도 사려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아무도 안 사는 이 책이 무슨 책이기에 그 여학생이 가장 귀한 책이라고 했을까?”하며 그 책을 읽어보았으나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학생이 한 말이 계속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아서 읽고 또 읽는 동안 그만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회개하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열심히 믿다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가 부흥목사가 되었습니다. 한 곳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며 자기가 옛날 예수 믿게 된 동기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앞에서 한 중년 부인이 마구 울어댔습니다. 자기 설교에서 은혜를 받아 우는 줄 알고 간증을 부탁했습니다. 그 여인은 나와서 기숙사에서 성경을 준 여학생이 바로 자기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 후 강도를 위하여 계속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한 여학생의 중보기도로 강도가 회개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고 부흥사가 되어 귀하게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7-11절을 보면 깊이 잠든 베드로를 천사가 찾아갔을 때 베드로는 깊이 잠들었습니다.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광채가 밝게 비취는데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울 때에야 일어날 정도로 깊이 잠들었습니다. 베드로가 태평한 사람이라 깊이 잠들었을까요? 아니면 상황 판단이 안 된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죽음 앞에 있지만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 충만해서 깊이 잠 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충만했던지 아니면 죽어도 천국 간다는 확신이 충만했을 것입니다. 만약 그런 확신이 없었다면 그는 두려워 떠느라고 한 잠도 자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윗에게도 베드로와 같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군인이었습니다. 그가 전쟁을 할 때 상대를 충분히 제압할 전력을 갖출 때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적의 전력보다 약한 상태에서 싸울 때도 많았습니다. 전쟁터에서 상황이 분리하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놀라운 신앙의 고백을 합니다. 시3:5-6입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 하리이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천만인이 자신을 둘러 진치고 죽이려 해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평안히 누워 자고 깨었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행16장에서 빌립보 감옥 안에서도 기도와 찬송을 드리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됩니다. 이런 담대함과 평안함이 어디서 왔습니까? 믿음입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과연 나는 환경과 상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하며 평안합니까? 어떤 상황 속에서도 깊이 잠들 수 있는 베드로와 같은 믿음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주님께서 이런 믿음을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9-11절은 옥에서 나온 베드로의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의 활동으로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런 사건이 이 시대에 있었다면 베드로에게 역사하셨던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베드로가 무죄인 것이 밝혀져서 정상적인 판결을 통해서 나오도록 하셨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옥에 갇힌 사람들이 옥에서 나오는 방법이 몇 가지가 나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천사를 통해서 쇠사슬이 풀리고 쇠문이 열리게 하셨고, 행16장에서는 옥터가 흔들리고 착고가 풀리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요셉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바로 왕에게 꿈을 꾸게 하셔서 그 꿈을 해석하는 일로 옥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묶고 있는 문제나 우리가 기도해주고 있는 사람을 묶고 있는 문제는 기도로 풀리는데,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풀리게 하실 것입니다.

옥에서 나온 베드로가 천사가 간 후에야 정신이 났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에 체험하면서도 꿈인지 생신지 몰랐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면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그런 것을 간증하면 사람들은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항상 사람의 시각에서 만물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기적을 믿지 못합니다. 하지만 기도를 통한 기적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기도를 통한 기적은 세계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때에 불란서가 독일 나치스 군대에게 패했습니다. 영국의 30만 대군이 프랑스를 도와주려고 갔습니다. 30만 대군이 자신들의 힘으로는 안되기 때문에 영국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해협으로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히틀러는 베를린에서 “도망하는 영국 군인들을 아주 전멸시켜 버리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때 영국왕 조오지 6세가 온 국민에게 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전 국민이 그 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날 독일 편에는 큰 폭풍우가 일어서 비행기가 한 대도 뜰 수가 없었고 탱크 한 대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국 편에는 그 도버해협이 어떻게 잔잔하고 고요한지 거울 같이 맑아서 수많은 배가 영국 군대를 무사히 영국까지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일 후에 영국 군대를 비롯해서 온 영국 국민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기도하는 사람이 기적의 주인공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3. 15절에 나타난 엉뚱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에 대하여 설명하기.
15절부터19절까지는 엉뚱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옥에서 나온 베드로가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문을 열기 위해서 나온 아이가 놀래서 문도 안 열고 집으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왔다고 알렸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로데라는 아이에게 “네가 미쳤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말이라고 하자 “그러면 그의 천사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도는 했는데 기도의 응답을 못 믿는 어리석은 신자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형편없는 믿음으로 구한 기도에도 응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으면 상처가 되는데 신실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믿지 못한다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이 서운하겠습니까? 저는 목회를 하면서 많은 성도를 만났습니다. 그 중에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떠나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사소한 오해 때문에 저에 대해서 마음을 닫고 교회를 옮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목사 아닙니까? 자신들의 영혼을 책임지는 목사 아닙니까? 오해가 있거나 섭섭한 일이 있을 때 저를 찾아와서 “목사님 이런 소리가 있던데 이게 사실입니까? 어떻게 된 것입니까?”라고 물었다면 잘 설명해 줘서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을 것인데 정말 아쉽습니다. 사람도 믿어주지 못하면 마음이 아프고 속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약속하시면 반드시 지키는 분입니다. 예수님께 기도해놓고 응답을 믿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정말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