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공부 2012년 11월 30일

헤롯이 죽다.
사도행전12장20절~25절

헤롯 아그립바는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그립바를 준엄하게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심판자이십니다. 종말적으로 모든 인류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심판은 종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끊임없이 진행됩니다. 누구든지 명백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거나,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도전하거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까지 다 심판을 받습니다. 아그립바의 심판을 보세요. 그는 세상에서 최고 권력자지만 하나님 앞에 초개같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여기 나오는 헤롯은 헤롯 아그립바1세로 조상 때부터 음탕하고 거만하며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헤롯은 유대와 사마리아 모두를 통치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본래 헤롯의 통치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지리상으로 농산물도 생산하지 못하는 지역이었기에 하는수 없이 헤룻의 통치권 아래서 나는 물건을 가져다 먹어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헤롯의 비위를 맞추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헤롯왕의 실세 중 블라스도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블라스도를 통하여 헤롯왕과 친하게 지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21)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두로와 시돈 사람들과 헤롯왕이 화친을 맺기 위해 날을 정하여 특별한 행사를 하던 날, 헤롯은 아주 화려한 왕복을 입고 높은 자리에 앉아서 백성들에게 연설했다고 했습니다. 헤롯의 옷이 얼마나 화려했는지 비치는 태양에 반사되어 눈이 부실 지경이었습니다. 22절의 백성들은 유대인으로 보지 않고 두로와 시돈 사람들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헤롯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신의 소리다.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과는 달리 위대한 사람을 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의 연설 내용이 훌륭했던지 아니면 목소리가 매혹적이었던지 그도 아니면 높은 자리에 빛나는 옷이 멋있어 보였던지 알 수는 없지만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게 헤롯이 신적인 인물로 추앙 받게 되었습니다. “23)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蟲)이 먹어 죽으니라” 헤롯은 신적인 인물로 추앙받으면서도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저자는 하나님의 천사가 헤롯을 내리쳤고 헤롯은 벌레에게 먹혀 죽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부분에 대하여 분명하게 기록했습니다. 헤롯이 갑자기 엄청난 통증으로 궁전으로 옮겨졌고 닷새 후에 그 병으로 죽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헤롯이 갑자기 병이 난 이유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중간에서 가로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요세푸스는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다’ 는 부분을 ‘이제부터 당신을 신으로 섬기겠나이다.’ 라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아랫사람이 아첨하면 대개 기분 좋아합니다. 하나님처럼 섬기겠다는 말에 침묵으로 인정한 헤롯은 마침내 비참하게 죽음을 맞습니다.

1.헤롯의 죽음을 통하여 몇 가지 신앙의 교훈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⓵.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영적으로 항상 민감해야 합니다. 특히 불의한 자의 형통은 결코 축하할 일이 아닙니다. 세상을 보면 분명 잘못과 죄 속에서 사는데도 형통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건강해요. 직장에서 승진도 잘 돼요. 돈도 잘 벌어요. 자녀도 잘 돼요. -그런 가정 그런 사람들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어찌하여 하나님은 저들을 저렇게 복 주시는데 나는 이 모양, 이 꼴인가? 하며 그들을 부러워하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합니다. 그러나 성도여러분. 내가 죄의 길을 간다고 하면 실패하고, 병들고, 일이 잘못되는 것이 정상입니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되는 것이 정상입니까? 안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세상에서 세상사는 방법으로 마음대로 살던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자마자 사업도 잘 되고 가정도 형통하겠습니까? 아니면 잘 안되겠습니까? 대답하기 어렵습니다만 예수 믿고 손해 보았다는 얘기 많이 들어요. 왜 하나님께서 예수 믿자 마자 바로 축복을 주시지 않고 시련을 주십니까?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고 나서 세상의 불의한 방법 그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하나님 방법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변화되지 않으니까 시련을 통해서 변하게 하십니다. 변화된 다음에 복을 주십니다. 예수 믿는 다는 것은 삶의 정당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과감한 청산을 의미합니다! 멋대로 사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결코 아닙니다. 잘못 사는데도 형통하다 –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증거입니다.
헤롯을 보실까요? 헤롯은 엉망으로 살았어요. 성적으로도 문란하고 자기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엉망으로 살았다면 가난과 질병과 고통이 주어져야 하는데 왕의 권한이 점점 강해지는 영광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통해 헤롯을 심판하셨습니다. 가난과 역경과 실패를 통해서가 아니라 영광과 형통이 심판으로 주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4장 세대 종말의 표징들에 대한 말씀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15절) 때가 온 줄 알라 하셨습니다. 성공해서는 안 될 사람이 성공하고,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승진합니다. – 심판이 닥쳐왔다는 사실로 깨달아야 합니다.

⓶ 상황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매사에, 매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이 잘 될 때에는 잘 되는대로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일이 잘 안되면 안 되는대로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만사를 무심하게, 무감각하게 보아 넘기는 것은 신실한 신앙인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 저 일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하나하나 이루어 가시는데 성도가 외면하거나 무심하게 지나쳐 버린대서야 되겠습니까?

헤롯은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가 감쪽같이 감옥에서 나갔는데도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양심의 가책이 없었어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가정사가, 사업상의 일이 자녀의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습니까? 그 속에도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신앙의 문제, 교회의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습니까? 그 속에도 주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매 순간, 매사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⓷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항상 넘나드는 두 문이 있으니 바로 교만과 겸손입니다. 겸손하구나 하다 보면 언제인가 교만의 자리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람들이 헤롯에게 뭐라 했습니까?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다시 말씀드리면 “당신은 바로 신이오.”라고 아첨했다는 말입니다. 헤롯이 부정하지 않았어요. ‘나는 신이 아니다’하지 않고 침묵했습니다. 침묵은 무언(無言)의 인정입니다. ‘당신은 신이오.’라고 했을 때 헤롯은 기분이 좋아서 가만히 있었어요. 가만히 있었기에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헤롯에게 신이라고 했기 때문에 헤롯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헤롯이 ‘나는 신이 아니오.’라는 소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많은 상처와 갈등은 바로 우리 자신이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임을 아셔야 합니다. 칭찬들을 때 기분 좋지요? 책망을 들을 때는 어떻습니까? 기분이 나쁘지요. 그러나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일로 인해 칭찬 받을 때 내가 잘나서 칭찬 받는 줄 알면 언젠가는 반드시 시험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재능 있습니다. 사회에서도 유능합니다. 많은 사람이 칭찬과 기대를 합니다. 그렇다가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비난받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럴 수도 있지’하면서 비난하는 / 책망하는 사람에게 화도 내고 서운해 하기도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이런 문제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스스로 상처를 받습니다.

벧전4:10-11 “10 각각 은사(恩賜)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목사도 목회하면서 시험 받을 때 있어요. 내가 목회 잘해서 교회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으로 착각할 때입니다. 아닙니다.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주시니까 힘주시니까 하는 것입니다. 영광은 누구에게?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교회학교 교사도, 찬양대도, 선교회 봉사도, 내가 영광 받으려고 하면 시험 들어요. 일종의 교만입니다.

누구에게 영광 돌려야 합니까? 하나님께.

헤롯이 벌레 먹혀 죽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너는 신이라’했을 때 베드로처럼 ‘나도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하지 못했어요. 침묵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가로챘어요. 교만입니다. 사람들이 왜 교만해 집니까? 한마디로 착각해서입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고 외면하시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어요. 큰소리치지 말아요.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겸손해야 해요. 감사해야 해요.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매 순간 겸손하게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상처 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2.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어떻게 심판하시나?

세상에서 예수 믿는 다는 이유 때문에 박해와 불이익을 당한 경우가 있지요? 때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예수 잘 믿으면 복만 주셔야지 박해는 무엇이냐? 물론 예수 잘 믿으면 틀림없이 복 받습니다. 그러나 박해도 있어요. 기독교역사에서도, 개인의 신앙생활에서도 교회와 성도가 많이 핍박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을 심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輕蔑)히 여기리라”(삼상2:30) 교회가 핍박받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핍박하는 자를 반드시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교회를 핍박하면 하나님께서 당장 심판하셨으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리 하시지 않습니다. 당장 얻어터지고 벼락이라도 한번 꽝치면 ‘이크’하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구나 깨달을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불의한 방법으로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는 자들이 있습니까? 내버려 두세요. 조용히 지켜만 보세요. 반드시 자신들의 함정에 빠져 망할 때가옵니다. 당장은 승리한 것 같지만 두고 보세요. 반드시 심판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핍박하는 자를 심판하사는 방법입니다. 헤롯을 보세요. 교회의 지도자 야고보를 목 베어 죽였어요. 단순히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의 환상을 사기 위해서였습니다. 자기 왕위를 유리하게 보존하기 위한 욕심 때문에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그래도 헤롯은 무사했어요. 기고만장하여 베드로까지 잡아 가두고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헤롯왕은 가이사랴에 가서 ‘당신은 신이다’소리를 들으며 화려한 옷에 높은 자리에 앉아 멋진 연설을 하는 최고의 영광을 누리는 중에 벌레에 먹혀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자기가 지은 죄와 파논 함정에 빠져 심판받게 하십니다.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핍박하는 자를 심판하실 때 핍박하는 바로 그 순간에 벼락이라도 내리치시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무서워 떨며 하나님께 머리를 숙일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실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면 핍박받는 입장에서는 자기가 의로워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켜주시고 함께 해 주시는구나. 자기의 의로움, 자기 능력이라 착각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핍박하는 자를 반드시 심판하시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핍박을 통해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은 더 순수해 지고 강해지지 않습니까? 헤롯이 하나님께 심판받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헤롯의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박해 때문에 온 교회와 성도들은 모두 모여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와 교회가 생각해야 할 것은 ‘박해가 온다’ ‘뭔가 잘 안 풀린다’하면 모두가 모여서 합심하여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뭔가 잘 안풀리십니까?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일도 뭔가 잘 안 풀리는 것 같습니까? 온 성도가 합심하여 간절하게 하나님께 빌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도 예루살렘 교회는 그를 위해 간절히 빌었습니다. 밤새워 기도했습니다. 교회와 성도는 핍박하는 자가 심판 받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 하나님께서 내 신앙이 더 순수해 지고 더 강건해 지기를 원하시는구나’ 깨닫고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면서 믿음의 자세와 생활을 가다듬고 바로 해야 합니다.

3. 박해를 받는 교회에 나타난 현상은?

“24절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 하더라“(표준새번역.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널리 퍼지고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 기독교 역사상 교회나 성도 개인이나 수많은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박해를 받긴 햇지만 교회는 더욱더 성장해왔습니다. 박해가 교회를 문 닫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어려움은 있었지만 반드시 극복되었습니다. 야고보가 순교 당했습니다. 베드로도 쫓겨 다니고 잇습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사도행전을 주의 깊게 보시면 박해 뒤에 반드시 교회부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시련 뒤에 반드시 사람이 모여드는 성장이 왔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헤롯이 죽고 나서 하나님 말씀이 점점 더 널리 퍼지고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헤롯은 어떤 자였습니까? 한마디로 교만한 자였습니다. 육신적 생각, 육신적 생활로 가득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헤롯이 죽고 나자 말씀이 충만해 지고 교회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개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때 내 마음 속에 하나님 말씀이 흥왕하여 집니까? 말씀의 감격이 넘칩니까? 말씀의 뿌리가 내리겠습니까? 내 마음에서 헤롯과 같은 육신적 생각과 교만이 없어질 때. 그럴 때 영적인 것들이 일어나고 거룩한 것들이 넘쳐나게 됩니다. 내 속에도, 우리 속에도 헤롯과 같은 것들이 버티고 있으면 말씀이 뿌리 내리기도 힘들고 뿌리 내리지 못하는 말씀이 무슨 결실을 맺겠습니까? 겸손하게, 신령하게 생각하며 살아야지요. 박해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닫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통해 시련을 통해 성장했습니다. 모세가 그랬고 요셉이 그랬어요. 박해와 시련을 통해 순수하지 못했던 것들이 다 닦여집니다. 녹들이 제하여 집니다. 어린애들은 병을 앓고 나면 단단해지고 약아 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잘못된 것은 내 탓, 그저 그런 것은 우리 탓, 잘된 것은 네 탓으로 여기며 삽시다. 비난과 칭찬에도 초연하게 대처합시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항상 민감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 음성을 들으면서 또 교회와 성도들 핍박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돌아보며 핍박을 이기노라면 교회는 부흥하고 성도는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심는 대로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반드시 거두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