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났습니다. 난리가 났지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들 피난 짐을 꾸리느라 야단법석이 났습니다. 적은 벌써 가까이 왔어요. 벌통 안의 벌떼를 들여다 본 적이 있나요? 적은 마치 벌떼처럼 전 도시를 점령하고 이 도시의 마지막 성벽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 걸음이라도 더 적에게서 떨어지려고 모두가 발버둥치는 그런 급박한 순간에 까마귀만이 태연했어요. 여느 때처럼 자기 집 지붕에 높이 낮아 코만 만지작거리며 피난 행렬을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지 않겠어요.

 ”어이, 암탉 친구, 멀리 길 떠나는가?” 피난 보따리를 이고 뒤뚱뒤뚱 뛰어가는 암탉 한 마리를 보고 까마귀가 말을 걸었어요. “적군이 우리의 문턱까지 왔다는데 자네는 거기서 뭐 하는가?” 암탉이 걱정스럽다는 듯 되물었대요.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가 친구. 자네들은 자네들 생각대로 하게나. 나는 여기 혼자 용감하게 남겠네.

 적이라고 하더라도 까마귀는 구워 먹지도 삶아 먹지도 않는다는 걸 자네는 정말 모르는가? 재수가 나쁘지 않다면 적들한테서 오히려 맛있는 치즈나 뼈다귀를 얻어먹을 수도 있겠지. 하여튼 잘 가게나 친구, 행운을 빌겠네.” 까마귀는 그렇게 큰 소리 쳤어요. 정말이지 까마귀는 혼자 남았어요. 그러나 기대했던 치즈나 뼈다귀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굶주림에 지친 적군들은 오히려 아무 것이나 닥치는 대로 끓여 먹었대요. 물론 까마귀도 수프에 빠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