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힘 있고 위대한 자들이 용기를 잃고, 그들의 영혼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두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은 말구유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폭력적인 사람은 누구든지 말구유에 감히 접근하지 못합니다. 일찍이 헤롯 왕도 그런 모험을 감행하지 못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옥좌가 무너지고, 강자가 떨어지며, 권력자들이 곤두박질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낮고 낮은 자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는 부자들이 무색합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과 배고픈 자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배고픈 자들을 좋은 것들로 배부르게 하십니다!” 그러나 “부자들은 빈손으로 보내십니다!” – 본회퍼, “1933년 12월 17일 대림절 설교” 중에서
어느 유대인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잡혀 와서 참혹하게 죽임을 당해야 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하고 두려웠을까요? 자신들의 친구와 가족이 처형당하는 그 끔찍한 광경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이 절규하듯 외쳤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그때 한 사람이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바로 저 사형수들과 함께 죽임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오시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약속대로 오시는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실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오신다면 마땅히 화려하고 장엄한 어가(御駕) 정도는 타고 오시겠지요? 그러면 우리는 크고 높고 화려한 곳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복음서가 말하는 하나님은 그런 곳에 오시지 않습니다. 복음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두 장소를 지목합니다. 그 한 곳은 말구유입니다. 말구유는 어떤 곳입니까? 낮은 곳입니다. 춥고 냄새나는 곳이지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따뜻한 방에서 태어납니다. 말구유는 버림받은 장소입니다. 사람의 장소가 못 됩니다. 또 한 곳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죽임당하는 장소입니다. 누가 죽임당합니까? 십자가는 가장 흉악한 죄수를 가장 참혹하게 죽이는 형틀입니다. 도무지, 도저히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 없는 장소입니다. 버림받은 자의 장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그리스도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말구유와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말구유와 십자가를 찾아야 합니다. 말구유와 십자가는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장소입니다. 우리가 도무지 교만할 수 없는 장소이지요. 우리는 다만 이곳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 본회퍼와 함께 기다리는 성탄 (대한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