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공부 2013년3월29일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하다.
사도행전17장16절~34절
오늘 말씀은 바울의 ‘아레오바고’에서의 설교내용입니다.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는 유명합니다. 유명한 만큼 관심도 많고 설교에 대한 시각도 다양합니다. ‘아레오바고’는 ‘아레스의 언덕’이란 뜻인데 ‘아레스’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전쟁 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래는 ‘아레스’신에게 제사하던 곳이었는데 후에는 공개강연장으로도 사용되었고, 주로 12명으로 구성된 재판을 하던 곳으로 사용되었기에 사람들은 재판을 어디서 하든지 아레오바고 법정이라고 불렀습니다. 자연석으로 된 계단을 오르면 돌로 된 광장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바울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언하게 됩니다.
1. 바울이 창조주(創造主)이시요 천지(天地)의 주재(主宰)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 합니까?
24, 25절에서 바울의 분명한 하나님 관(觀)에 대항 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하는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모든 의욕을 잃고 의기소침해 있었습니다. 좀처럼 탈진이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했던 루터가 집에 돌아와 보니 부인 폰 보라 여사가 상복을 입고 있었습 니다. 깜짝 놀란 루터가 묻습니다. “어떻게 된거요?” 부인이 말합니다. “루터의 하나님은 죽었 어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여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당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침울하게 있을 수는 없어요. 당신이 그토록 힘이 빠져 일어서지 못하는 것을 보니 당신의 하나님은 돌아가신 것이 틀림없지 않소?” 그 말은 들은 루터는 벌떡 일어섰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헬라신들의 우두머리는 제우스 신입니다. 그러나 제우스 신 역시 헬라의 여러신들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아덴에는 약 3만이 넘는 신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은 여러신 가운데 가장 위대한 제우스 신이나 헬라 사람들이 섬기는 3만개가 넘는 신들 중에 하나가 아니라 그분은 유일하신 분이고 우주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꼭 묻는 말이 있지요?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느냐?’대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분입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신음하는 백성을 구하라고 보내시는 하나님께 ‘나를 보내신 하나님이 누구냐고 물으면 뭐라 할까요?’ 물었을 때 하나님이 뭐라 하셨어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치 않으려 합니다. 이것은 마치 부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녀들과 같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가 있나요? 인간이 하나님을 부정한다고 하나님이 없어지나요? 하나님 무시한다고 하나님이 무시당하십니까? 바울은 먼저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임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저절로 굴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 많은 말을 할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야 있겠습니까? 아주 어린아이가 어떻게 부모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겠어요? 그러나 부모가 어린아이의 모든 것을 돌보고 양육하고 하지 않습니까? 인간의 수준으로 하나님을 증명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입니다. 그러나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세상이 그냥 굴러가도록 버려 두시지 않고 주관하시고 섭리하시고 통치하십니다. 구경만 하시지 않습니다. 방관하시지 않으십니다. 주재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손으로 지은 집’이란 무엇을 가리킬까요? 아레오바고 언덕 위쪽을 보면 ‘파르테논 신전’이 보입니다. 파르테논 신전이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하다 해도 그것은 인간이 지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후에 하나님께 봉헌하며 드린 기도가 생각나십니까? 열왕기상8:27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아무리 대단한 건물이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사람이 지은 건물에 사시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성전에 사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 성전에서는 거룩한데 세상에서는 그렇지가 못해요. 이 세상 모두가 다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곳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손으로 지은 신전이나 성전에 국한 될 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며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것이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 – 신에게, 귀신에게 먹을 것, 재물 가져다 바칩니다. 그거 받고 노여움 풀고 복 달라는 뜻이지요. 이것이 제사 아닙니까? 예배는 달라요. 우리가 하나님을 도울 수 있습니까? 오만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도울 수가 있어요. 교회 다니는 것이 하나님을 돕는 것입니까? 헌금하는 것 하나님 위해서 합니까? 하나님이 인간의 도움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분입니까? 그런 하나님이라면 믿지 마세요. 하나님은 부족한 것이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도 결국 자신을 위해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부족 때문에 사람의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에 대하여 알아본다면 심장은 하루에 103,689번 뛰고 피는 하루에 2억6천8백만km를 달립니다. (서울 부산이 500km라면 하루에 26만8천 번 왕복하는 것입니다) 숨은 하루에 23,040번 쉬고, 750개의 근육이 움직이고 손톱은 하루에 0.000115cm만큼 자라고, 머리카락은 0.04285cm자라고,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에 33.000번 정도 눈을 깜빡이고 두뇌는 700만개 세포가 운동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한 순간 한 순간을 살수가 있습니다.
2. 바울은 사람과 역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 하고 있습니까?
“26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年代)를 정하시며 거주(居住)의 경계를 한(限)하셨으며”
26절에서도 바울은 하나님에 대하여 몇가지 더 설명하고 잇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왜 바울이 이런 말을 했을까요? 당시 아덴 사람들은 그들이 아티카(Attic)본토의 흙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자랑한데 대해 바울은 인류는 모두 한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한 조상, 한 혈통의 후손임을 강조합니다. ‘한 혈통으로’는 ‘한 사람으로부터’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한 혈통이었던 인류가 왜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가지게 되었습니까? 인간의 죄때문이지요.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겠다는 욕심과 교만 때문에 언어와 문화와 혈통이 달라졌지만 본래는 한 사람 – 누구? 아담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만든 인간을 땅에 살게 하셨습니다. 인간에게 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씀 입니다.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입니다. 죄가 들어온 후에 본래는 엉겅퀴와 가시를 냈습니다. 남자는 땀흘려 일해야 했고 환경은 오염되어 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문제 해결의 길은 – 오염된 환경, 땅 문제등 –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연대를 정하시고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역사를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역사를 버려두시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 속에서 함께 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십니다. 27절 후반절입니다.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바울이 왜 이 말을 했을까요? 기독교에서 믿는 하나님은 이 땅과 만물 사람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모든 역사를 관여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당시 희랍의 에피쿠로스 학파들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다구요? 신(神)이 있기는 하지만 인간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인간의 역사를 전혀 간섭하지 않으니 있긴 있지만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바울은 바로 이점을 바로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3. 바울은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이라고 어떻게 설득하였습니까?
27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28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起動)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민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考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은 인간이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가 잇는 분입니다. ‘혹 더듬어 찾아’라는 표현은 어두움에서 무엇을 찾는 것 같이 불확실한 일 같지만 불가능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게서 인간에게 가까이 계시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숨어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육신의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우리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분이지만 그러나 가까이 계시기에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찾지도 만나지도 못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을 잘못된 곳, 엉뚱한 곳에서 만나려 합니다. 29절 말씀처럼 신을/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가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만들어낸 – 한마디로 우상에서 만나려 한다는 것 –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기는 찾는데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어요. 잘못된 곳에서 하나님을 찾아요. 하나님은 사람 손으로 바쳐진 제물이나 받아서 먹고 사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수많은 神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생명도 없는 우상숭배 – 거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을 때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장사였습니다. 아버지가 잔치 집에 간 사이 동네사람이 아버지가 파는 우상 앞에 제물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성이 뛰어난 아브라함은 작은 우상은 다 부수고 큰 우상의 손에 몽둥이 하나를 쥐어주고는 제물을 큰 우상 앞에 놓았습니다. 돌아온 아버지 데라가 화가 나서 어찌 이리되었느냐고 묻자 우상들이 제물을 서로 먹으려고 싸움하다가 큰 우상이 모두 부숴 버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말합니다. “우상이 무슨 생명이 있다고 저희들끼리 죽이고 말고 하겠느냐?” 때를 놓치지 않고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생명 없는 우상을 왜 섬깁니까?” 하나님을 찾으려면 만나려면 제대로 알고 바른 곳에서 찾아야지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찾으려는 노력이나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족, 자기중심에 빠져서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까 만나지 못합니다.
신명기4:29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이사야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호세아10:12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起耕)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 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마음 밭을 갈아엎고 간절히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비처럼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요한계시록3: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만족을 구하려 합니다. 물질에서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 참된 만족과 행복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우리 안에 예수님 모시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면 그곳에 천국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만나면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 만나면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찾고 찾으면 만나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나오자마자 만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를 키워 주신 할머니는 술과 담배에 몇 십 년 동안 인이 박히신 분이었는데 예배 중에 설교하시는 목사님 뒤에 있는 십자가에 달리신 어떤 사람이 피를 줄줄 흘리는 것을 보시게 되었는데 그날 이후 담배와 술을 한 순간에 끊어 버리시게 되었습니다. 피를 흘리는 사람이 예수님 이신 것도 나중에 설명해드려서 알게 되셨습니다. 십자가의 주님,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참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만나주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찾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나는 일입니다.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체험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체험하고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도 온몸으로 체험해야 합니다.
4. 바울 설교의 결론을 요약해 봅시다.
⑴ 회개하라
30절입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알지 못하던 시대’-어떤 시대를 말합니까? 복음이 전해지기 전, 예수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잘못된 것이 있어도, 혹 우상숭배가 있었더라도 미련함과 실수를 용서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다르다 이겁니다. 당신들이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해서 우상을 숭배했더라도 하나님께서 참아주셨다. 잘못하긴 했지만, 무지해서, 몰라서 그랬기에 참으실 수가 있었지만 이제는 복음이 확실히 전해졌고 따라서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이 되었기에 아무도 예외 없이 꼭 해야 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회개하라” 회개해야 합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가 없습니다.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 회개해야 합니까?
⑵ 심판이 있기 때문에
31절입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公義)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회개해야 할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날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심판합니까? 재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심판에는 아무도 예외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반드시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히브리9:27절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심판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믿음입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 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누가?-믿는 성도들이)더욱 불쌍한 자리라” 심판을 통한 천국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열심히 믿는 것 자체가 헛된 것이요 믿는 성도들이 불쌍하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심판도 하나님 나라도 분명히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심판에 대한 믿을 만한 증거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 예수의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분명하게 만나지 않았습니까? 예수는 분명하게 부활하셨기에 분명한 심판주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심판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회개하고 철저하게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바울의 설교는 퍽 딱딱한 내용이었지만 그러나 꼭 필요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아레오바고 이 설교에서 하나님에 대해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시고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에는 계시지 않고 하나님은 부족한 것이 있어서 사람에게 섬김을 받는 분이 아니시고 하나님은 인류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신 분 또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한 혈통으로 지으시고 땅에 살게 하시고 역사를 주셨다 사람을 찾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는데 찾을 의지가 약하던지 엉뚱한 곳에서 찾기 때문에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부활의 주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니 반드시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 얻으라 하는 것이 바울 설교의 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