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그나티우스에게 있어서 순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며 (이하,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 2:1),”세상으로부터 하나님에게 기울어가는 것”이며(2:2), “기독교인임을 증명하는 것”이며(3:2),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며(4:2),”그리스도에게 이르도록 하는 것”이며(5:3), “하나님에게 속하는 것”이며(6:2), “진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6:2), “하나님의 고난의 모방자”(6:3)가 되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하셨고 이 복음은 순교의 피로 지켜졌습니다. 순교는 이교도들을 향한 가장 확실한 변증이었으며 그렇기에 속사도 시대의 교부들에게 이 순교의 문제는 생활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에게 순교는 목숨을 잃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고 그것은 새롭고 영원한 삶으로의 비약,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배교가 곧 이 땅에서의 생명을 보존하는 유일한 길이었던 때에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와 성도들은 순교를 통하여 얻는 영원한 나라에서의 생명을 기꺼이 열망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늘 오해와 이해, 편견과 관용, 폭력과 평화의 교차되는 언저리를 맴돕니다. 싸움이 끝난 후 아무도 승리하지 못한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후회와 회한의 시간을 허비하기 일 수입니다. 야수처럼 달려드는 현실 앞에서 애써 태연하려 하지만 우리의 유전된 부패성은 결코 우리를 놓아두지 않습니다. 토인비는 좋은 말로 역사를 가리켜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 하였지만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싸움의 날들이라 해도 옳을 듯싶습니다.
-3회 연속 게제중 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