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노릇하던 사람이 왕을 닮았다는 이유로 끌려가 가짜 왕 노릇을 합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하고 대종상을 휩쓴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에 나오는 가짜 왕은 진짜 왕이 마음 놓고 자리를 비운 채 유흥을 즐기거나 살해 음모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목적의 단역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왕이 심각한 병으로 드러눕자 그 가짜는 예정보다 길게 왕 노릇을 하게 되는 것으로 그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진짜와 가짜 사이를 넘나드는 주연배우의 이중역할이 돋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그 기발한 상상력 때문에 객석에 앉은 나에게 관람료를 아까워하지 않게 해준 고마운 영화였습니다. 영화 속의 가짜 왕은 처음엔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되는 역할이었지만 차츰 공부까지 해가며 진짜 왕 노릇을 하면서 파문을 일으킵니다. 진짜 왕 같은 연기는 오랫동안 몸에 밴 광대생활이 뒷받침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정말 중요한 인간미 넘치는 왕 노릇도 어렵지 않게 해냅니다. 오랫동안 왕에게 마음을 닫고 살던 왕비가 감격스러워하며 마음을 열게 되고, 그 가짜 왕을 위해 두 사람이 자발적으로 목숨을 바치기까지 합니다. 물론 그러는 동안 정치적으로 미묘한 갈등을 보이던 정책들을 단숨에 뒤집고 대동법을 시행하는 등 일반 백성들에게는 복음과 같은 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 가짜 왕은 정치적 고려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계산이 필요 없었습니다. 매우 단순했습니다. 그는 누구도 두려울 필요가 없었고 눈치를 봐야 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또 잃어버릴 것도 많지 않은, 원래부터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백성에게 유익하면 좋은 것이고 백성들이 편치 못한 일이라면 하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그 자신이 평범한 백성 중의 하나였기 때문입니다.꽤 건전한 가치관을 가진 관료들조차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랫동안 이 눈치, 저 눈치를 살피며 계산만 하던 것들을 단숨에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기득권자들의 당황하는 태도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현실에선 왜 그런 역사적 상상이나 영화적 상상에서 등장하는 가슴 뭉클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왜 감동을 받을 만한 일들이 쉽지 않을까요. 너무 계산적이기 때문입니다. 옳은 일이긴 한데 고려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긴 한데 그것 때문에 국민보다는 개인적인 손실과 이익을 지나치게 좋은 머릿속에서 매우 빠르게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머리가 아닌 따뜻한 가슴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세상도 단순하게 행복하지 않을까요. 대통령이 되고 싶은 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글 김 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