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 공과 2012년 8 월 10 일
“사도들이 능욕을 받다”
사도행전5장17절~42절
사도들이 표적과 기사와 이적을 많이 일으키며 예수님을 전하던 중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의 당파 사람들이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게 됩니다. 능욕을 달하게 됩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하던가!
1.사도들의 표적과 기사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됩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삶의 과제에 있어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 하는 결정은 우리가 승리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는 것이 승리와 성공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15세기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당시 카톨릭은 모든 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유럽 전체를 가톨릭 교회가 지배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거대한 교권에 맞서서 싸웠던 마틴 루터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루터에게는 [필립 멜랑흐톤, Philip Melanchton]이라는 친구요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마틴 루터 보다 열 다섯 살 아래였습니다. 그러나 굉장히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얼마나 친했느냐 하면 두 사람은 죽은 다음에도 유언에 따라서 한 무덤에 묻힐 정도였습니다.
마틴루터가 행동 주의자였다면 필립 멜랑흐톤은 이론적인 학자였습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하다가 종종 실망했습니다. 좌절하기도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때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자기의 어린 후배였지만 친구였던 멜랑흐톤은 늘 루터 곁에서 말하기를 “당신이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를 진리하고 확신할 수 있다면 그 진리는 반드시 이길 것을 믿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쓸 때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멜랑흐톤은 마틴 루터에게 성경한 구절을 늘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꼭 같이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게 된 말씀이 있는데 로마서 8:31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들은 이 말씀을 근거해서 종교개혁에 대한 승리를 확신했고, 마침내 종교개혁은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이 확신이 우리의 확신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진리는 세계를 바꿀 것입니다. 환경을 바꿀 것입니다. 문제를 능히 이길 것입니다. 나의 삶에 있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성취되고야 말 것 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하신다는 하나님의 임재의식입니다.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이사야서 43:2절 말씀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 네 구원자임이라.”
초대교회 사도들에게 주신 표적과 이적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하게 혹은 모든 시련을 넉넉히 이기게 하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함께 함으로 확정 지어 주신 사건이며 확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면 우리 앞에 온갖 장애물과 어려움이 있다 할 찌라도 함께하시기에승리를 확신 할 수 있습니다.
2.초대교회는 건강한 교회로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의 건강한 교회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순종하라. (27-32, 41)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감옥에게 나오게 한 후 어떤 말씀을 하였습니까? 20절 말씀입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이 말씀을 받은 제자들의 태도가 어떠했습니까? 21절입니다.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 시간이 언제였습니까? 새벽이었습니다. 새벽이라는 이 시간이 우리에게 순종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새벽에 누가 있겠습니까? 아침이 되어야 성전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주의 사자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새벽에 성전으로 갔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21절 보십시오! 순종하여 새벽에 성전에 가니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순종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가라! 하시면 새벽이라도 가야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복주시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순종했습니다. (29절) 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다시 잡아 공회앞에 세우고 위협을 하였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순종하였습니다. 29절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순종할 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어려운 환경에서 승리하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출애굽기 1장에 히브리산파들이 그렇게 순종했습니다. 바로 왕이 명령하기를 히브리여인들이 조산할 때 남자거든 죽이고 여자여든 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를 살렸습니다. 출애굽기1:21 절입니다.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순종할 때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넉넉히 그 환경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니까? 즉각적으로 순종하십니까? 핍박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고난과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순종하십니까? 이런 순종이 쉽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히브리산파들이 왕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을 순종한다는 것은 생명을 걸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기가 너무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산파들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남자아이를 살리면서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구체적인 순종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종을 성서적으로 이해하면서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두말이 필요 없이 성경 말씀대로 살면 됩니다.
3.믿음에 따른 기적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 합니까?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다는 것을 믿어라. (17-26)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여 베드로에게 기적과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베드로와 사도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으로 교회에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교회를 칭송하였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 때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시기하여 사도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는 핍박이 있었습니다. 17-18절입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이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9절입니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하나님이 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허용하시는지 그것은 잘 모릅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어떤 이유,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유익일 수 있는 어떤 계획이 있기 때문에 주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삶의 장에 고난을 허용하신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그의 백성들이 고난 속에 있을 때 주님은 반드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삶이 장이 캄캄한 골짜기기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그 골짜기 속에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서 3장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왕이 노하고 분하여 위협을 합니다.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 이겠느냐”
풀무불의 시련 앞에서 이들은 한 가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3:16-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왕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는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라.”
왕이 주는 시련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이 자신들이 당하는 그 풀무불 속에서도 함께 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풀무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풀무불 속에 던짐을 받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왕이 세 사람을 던져 놓고 보았는데 그 불 속에서 세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을 보았습니다. 네 번째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난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하는 하나님, 그 주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확신하며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어떤 환경가운데서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하나님을 신뢰할 때 그 환경을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기적의 역사와 능력이 나타 날 줄로 믿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말년에 여러 가지 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우 한 분이 목사님을 방문해서 오셔서 “목사님 아프시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스펄전 목사님이 이런 대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네, 아파요 너무 너무 아파요 그러나 이 고통보다 주님은 내게 더 가까이 계셔요 그것이 나의 위로랍니다” 그렇지요. 아픈 건 아픈 것입니다. 고난이 힘들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고난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픈 건 아픈 것입니다. 시련은 시련이에요. 그 후에 아무리 빛나는 약속이 있어도 아픈 것은 아픈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매우 일관성 있게 약속을 주고 있습니다. 주의 백성들이 고난 속에 있을 때 반드시 찾아오셔서 함께 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고백처럼 고통보다 더 가까이 계신 주님, 그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그 주님만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이 골짜기를 무사히 통과하게 됩니다. 다윗은 시편23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시편56편에서는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가 물러가리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인 줄 아나이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어떤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뢰하면 승리한 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