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 공과 2012년 9 월 21 일
빌립과 에디오피아 內侍.
사도행전8장26절~40절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유다와 사마리아에 전파된 후에, 마침내 아프리카 대륙의 에디오피아까지 전파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두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빌립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에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책임 맡은 신하 내시입니다. 빌립은 신앙생활을 오래 한 분들의 본이 되고, 내시는 신앙생활을 첫 출발하는 분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1.빌립과 에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관리와의 만남에 대하여 설명하여 보시오
오늘 말씀은 성령의 계시의 역사를 설명해 줍니다. 이디오피아 왕 내시가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고 있습니다(27). 그는 독실한 유대교인입니다. 순례차 예루살렘에 왔다가 귀환하는 길에 마차 안에서 아사야서 53장7절을 읽고 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읽었지만 그 뜻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 성령이 빌립에게 계시하십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하시니 그 길은 광야라”(26). 그 말은 “이디오피아 내시가 광야 길을 가고 있으니 가서 전도하라“는 말입니다. 그때 빌립은 사마리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달려가 보니 내시가 병거를 타고 가면서 성경을 읽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뜻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라고 묻자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찌 알겠는가” 라고 반문합니다(31). 그리고 내시는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앉으라”하고 “여기 말하는 자가 누구를 말하는가”고 묻습니다(34). 그래서 “빌립이 입을 열어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였다”고(35)고 했습니다. 그러자 내시는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 세례를 달라 해서 세례를 베풀었다”(36)고 했습니다. 그 말은 내시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는 것을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복음의 흐름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복음이 처음에는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로 확대되고 마침내 로마로 세계선교로 발전되어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빌립이라는 제자를 통해서 복음이 사마리아를 넘어 세계화되어 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특징은 하나님은 성령의 교감이 가장 민감했던 빌립을 사용하셨음을 말씀합니다. 그를 통해 복음이 세계화 되고 마침내 이디오피아로 넘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성령은 이디오피아에 복음을 전하시는데 내시와 빌립을 사용하십니다. 결국 성령은 1500km 한 달간의 거리인 이디오피아에 복음을 전하는데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을 사용하셔서 결국 이디오피아를 복음화하고 아프리카에 복음을 확산시키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의 사건도 똑같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고넬료는 로마군인 백부장이고 군 지휘관입니다. 그러나 그는 경건한 신앙인으로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중에 “욥바에 있는 베드로 청하라”는 성령의 계시를 받습니다. 그 시간에 베드로도 기도 중에 “누군가 찾아 올 테니 그를 따라가라”는 계시를 받게 됩니다. 의심하지 않고 가이사랴에 살고 있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 보니 성령이 그 집으로 인도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집에 성령이 임하심을 보고 온 집안 가족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고넬료 한사람이 세례를 받고 그 집안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의 골자는 고넬료 집안이 세례를 받음으로 로마전도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로마전도 계획은 고넬료에게 계시로 나타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베드로와 고넬료는 신분의 차이로 서로 만날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고넬료는 당시 로마인으로 지배계급이었습니다. 유대인과 사사로이 만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역시 유대인 선민으로 이방인을 사사로이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의 만남을 성령이 주선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은 아주 은혜로운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그 일은 주선자나 연출자 그리고 출연자 섭외 모두를 성령이 하신 일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은 오늘도 똑같은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영적 교류가 예민하게 이루지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문제는 성령과 예민하게 교류하고 교제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빌립이라는 한사람이 영적 교류가 아주 예민한 결과 하나님은 그 한사람을 통해 이디오피아를 복음화 시켰습니다. 베드로 한사람이 영적으로 예민함을 간직한 결과 기도 중에 계시가 주어져서 고넬료 집을 구원한 결과 그 사역이 결국 로마를 복음화 하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런데 소돔은 이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 한사람이 없어서 그 성이 멸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한사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을 사용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어느 한사람을 사용하셔서 일을 하십니다. 니느웨 성을 구원하시는데 요나 한사람을 통해서 12만 명을 구하는 역사를 하셨습니다. 위기에 처한 민족을 에스더 한사람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나설 때 민족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느헤미야 한사람을 사용해서 이루셨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일에 예수님 한분으로 족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때로 다수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이 한사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장차 어떻게 사용하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 중 누구를 선택하고 사용하실지 모릅니다. 다만 우리는 영적으로 예민하게 주님의 영과 교류해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과 친밀한 교제를 가지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령과 함께 하고 교제하고 교통의 삶을 가지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14장2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신다.”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보혜사로 와 계십니다(요16:7). 이 보혜사는 5가지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도우시고, 가르치고, 위로, 변화, 판단하시는 역할”입니다. 성령과 깊이 교제할 때 이런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나 할 일을 그분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인도하십니다. 또한 “성령의 음성을 듣는 일”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나 다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5가지 통로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묵상”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자세히 읽고 관찰하고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뜻을 들려주시는 중요한 방법이고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꿈입니다. 하나님이 꿈으로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꿈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때로 꿈은 무의미한 꿈도 있지만 메시지가 담긴 꿈도 있습니다. 그리고 “환상”입니다. 구약시대 선지자와 신약시대의 사도들은 환상을 통해 계시를 받았습니다. 고넬료, 빌립, 다니엘, 요셉 등 모두가 환상을 통해서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환경과 사람을 통해서 계시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을 통해서 길을 인도하시고 또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뜻을 전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감”입니다. 우리들이 누군가를 위해서 간절히 중보기도 할 때 우리에게 영감을 주셔서 교통하시기도 합니다.
1873년에 뉴욕을 향해 항해하던 로크 에른호라는 유람선이 항해 중 조정타가 고장 나서 강한 바람으로 정상 항로에서 크게 이탈하여 하루하루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선장은 하루 내에 배가 침몰할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 배에 쿡이라는 목사가 승선하였는데 그 사태를 놓고 다급하게 기도였습니다. 그는 그 기도하는 중에 구조 받을 것을 확신을 얻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승객 모두 불안한 마음으로 갑판위로 모였습니다. 배는 심히 기울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때 갑자기 브리티시 퀸이라는 배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전날 밤 그리스인 선장도 그 시간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는 쿡목사를 중심으로 구조를 위해서 기도하고 같은 시간에 두 배에서 기도한 것이 영적인 교통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스인 선장은 기도하는 중에 북쪽으로 선회하라는 내적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빌립에게 내시에게로 가라고 역사하신 하나님이 그 선장에게도 북쪽으로 선회하라고 영적 감동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최고속력으로 달려가 도착해 보니 배가 침몰하고 있어 그 배를 구조한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분별할 줄 아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인해서 그날 많은 사람이 구조되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 중에, 이 나라에, 우리교회에 이 성령의 음성을 분별한 줄 아는 한사람이 중요합니다. 소돔은 그런 한 사람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또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고 연합하는 일”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순종과 연합의 삶을 살아갈 때 일어납니다. 사도바울은 1차 전도 여행 때 큰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구부로를 거쳐 안디옥에 이르러 많은 기적을 통해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소아시아 지방을 거닐면서 루스드라와 더베 등지에서 앉은뱅이를 고쳤습니다. 사람들의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2차 전도여행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시아 지역으로 가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허락을 하지 않으시고 밤에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 말은 아시아지역으로 가지 말고 마게도냐 지방으로 가라는 계시였습니다. 마게도냐 지방은 오늘의 그리스지역을 말합니다. 그때 바울은 아시아지역으로 가기로 한 계획을 포기하고 마게도냐 지방으로 갑니다. 그 결과 오늘 유럽전도가 시작된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에 순종하고 연합하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때 성령의 은혜와 섭리가 나타납니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의 인도를 받고 순종하고 따르면 안전하게 어느 곳이든 갈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는 순박하고 순종을 잘 하니까 언제나 안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순종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 길이 분명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인데도 내 의지로 바꾸려고 하니까 사고가 일어나고 실패가 주어지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칭 엘리트라는 사람들과 유능인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자기고집이 강합니다. 그래서 순종하지 않습니다. 협동심도 약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예루살렘 대학으로 가서 성적표를 보고 수재나 엘리트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갈릴리로 가셔서 어부들을 제자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은 고기 잡아 살면서 실패를 경험했고 가난도 경험하였고 협동심을 발휘하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엘리트나 능력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자칭 지성인이고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협동심도 순종도 겸손의 정신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목회자들 중에 재벌의 아들이 없고 미인 미남도 없고 엘리트들이 적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절대적으로 순종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순종과 겸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스키를 탔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어떻게 스키를 탈 수 있는가 하면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빨간 조끼를 입혀 구별하게 한 후 각자에게 믿을만한 지도자 한사람씩을 배정합니다. 그리고 지근거리에서 스키 막대기를 두드릴 때 그 소리를 듣고 방향을 찾게 하고 앞의 상황에 대해서 육성으로 말해 줄 때마다 그 지시를 절대로 따라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각 장애인들은 그 지도자들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면 스키 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절대로 필요한 요소는 믿음이고 순종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렸다가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열흘 동안 한마음으로 기도하다가 마침내 약속대로 성령을 받고 사역에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강림 후 제자들은 더 이상 옛날의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은 오늘도 역사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들의 영적 지도자이십니다. 우리 안에서 길을 안내하시고 삶을 인도하시고 신앙을 회복시키십니다. 그 성령과 함께 하려면 그 성령과 교류를 이루고 순종하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때 성령은 보완하시고 변화를 주시며 힘을 공급하고 안내를 이루십니다. 오늘 우리들이 여기까지 살아온 것도 그 성령의 전적인 인도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세상에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 성령과 연합하여 살아가는 갈 때 승리가 주어지고 능력과 인도하심을 받아 사역을 감당하고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2.빌립과 내시에 대하여 연구하여 봅시다.
먼저 빌립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분이셨습니다. 빌립은 교회의 일꾼으로서 모든 면에 모범이었습니다. 빌립은 성실한 봉사자였습니다. 빌립은 봉사하는 일에 앞장 선 분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고 초대교회 평신도 일꾼으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높은 사람, 있는 사람을 섬긴다면 어떤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그러나 빌립이 섬긴 사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구제 대상을 섬겼습니다. 가난하고 낮은 사람, 어떤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비천해 보이는 그런 사람을 더욱 섬겼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교회의 중책을 맡을수록, 그의 심령은 낮아지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고 자기 목숨을 대속 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성숙한 사람일수록 겸허하게 남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빌립은 열심 있는 전도자였습니다.
일곱 일꾼 중에 스데반이 최초 순교자라면, 빌립은 훌륭한 최초의 전도자였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동네에 가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전도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내시에게 전도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무척 경멸했고 천시했습니다. 그들이 혼혈족이라 해서 천시한 나머지 서로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마리아 동네를 통과할 일이 있어도 다른 곳으로 돌아갈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서로 멸시하고 천시하고 따돌리고 소외되었던 그 사마리아 동네를 빌립이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은 “전도의 열매가 맺어 갈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주님의 참 제자가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전도의 열매를 하나하나 맺어 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빌립은 믿음의 가정을 만들어 간 신앙의 아버지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정이 작은 교회로서 신앙의 분위기를 이루어 갈 때, 하나의 작은 천국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가정을 신앙의 분위기로 만들어 가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가정예배입니다. 혼자서나 두 분이 있어도 함께 모여서 찬송을 부르고, 서로 손을 잡고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우리 가정이 마땅히 해야 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성경 말씀을 같이 읽을 수 있을 때, 그 자정이 하나님의 작은 나라로서의 모습을 지닐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생활을 가진 빌립, 성실한 봉사자, 열심 있는 전도자, 경건한 믿음의 가정, 이런 삶을 살아간 빌립이었기에, 성경 말씀에 보면 성령께서 빌립을 이끌어 간다 했습니다. 성경의 이끌림을 받는 제자였습니다. 성령님의 도움과 성령님의 능력이 빌립을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빌립으로부터 전도를 받은 초신자였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믿음은 왕성했습니다. 돌아가서는 자기 조국 에디오피아를 복음화하는 데 앞장섰을 것입니다. 그래서 에디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 국가가 된 것입니다.
내시는 비록 초신자이지만, 모든 초신자의 모범이 됩니다.
믿음의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 또는 믿음의 생활을 오래 하셨다 할지라도 믿음의 확신이 없이 관습적으로 예배드리는 분이 혹시 있다면, 내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신앙을 다시 출발한다 생각하고, 내시가 어떤 결단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을 성숙시켜 갔는가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내시에게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내시는 예배드리는 데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솔로몬 임금 때부터 유대 나라는 에디오피아와 깊은 유대관계를 가진 것 같습니다. 에디오피아의 스바 여왕까지 예루살렘을 다녀갈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에디오피아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순례 와서 유대의 율법을 듣기도 하였고, 예루살렘 의식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전통을 이어받아서, 국고를 책임 맡은 신하 내시 역시 예루살렘을 찾은 것 같습니다. 성경 말씀에 보면,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려면 무엇보다도 예배에 정성을 다하셔야 합니다. 예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앙생활에 가장 소중한 부분입니다.
예배에 대해서 십계명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했습니다. 예배드리는 날을 기억해서 지켜야 합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생활하는 동안에, 항상 주일을 염두에 두고 일주일을 생활해야 합니다. 주일에 할 일이 있으면, 미리 하고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이 날을 미리 기억해 두고, 준비하시는 생활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드리는 시간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 생활이 우리의 믿음을 장성케 합니다.
두 번째, 내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것을 가까이 했습니다.
내시는 병거를 타고 가면서도 성경을 계속 읽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병거와 참기 어려운 무더위 속에서, 불편한 가운데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빌립이 내시의 병거 가까이 갔을 때, 내시가 성경을 읽는 그 모습은 너무나 진지했습니다. 이사야 53장을 읽으면서 고난의 종으로 오신 분이 누구일까? 성경을 음미하면서 읽습니다. 이때 빌립은 바로 그 고난의 종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36절에 보면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여러분께서 꼭 명심해야 할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으로서, 한 말씀 한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두 번째, 성경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도록 하셔야 합니다.
세 번째,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시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시는 경건한 성례에 참여하였습니다.
내시는 빌립과 함께 내려가다가 물가에 이르게 되자 빌립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인해서,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된 내시는 조국 에디오피아에 복음을 전한 훌륭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을 받은 표시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우리가 영적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확실한 지체가 되었다는 영적 은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례 교인은 교회에서 집례하는 성찬에 꼭 참여하셔야 합니다. 성찬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영합되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을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례는 비록 교회의 의식에 의해서 목사가 집례하게 되지만, 그 내면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임재하시고,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영적인 은총을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셨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빌립을 닮아 성실한 봉사자로서, 열심 있는 전도자로서 믿음의 가정을 만드는 신앙의 본 보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믿음 생활을 시작하는 분은 내시가 얻은 과정들 즉, 예배드리는데 정성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는 열심과 경건한 성례에 참여하여 영적 깊이를 통해서 믿음을 성숙시켜 갔음을 본받아 믿음 생활이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3.오늘 말씀처럼 이런 체험을 하기위하여 어떤 실천을 하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