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공과 2012년 9 월 28 일

사울이 회개하다.
사도행전9장1절~19절

인생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자신의 삶을 풍성 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며 천국의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삶을 살려고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만남’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져야 만 합니다. 우리의 삶은 소중한 만남들을 통하여 풍성하여지고 아름다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중요한 만남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1.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을 통해서 그것을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이 땅에서 무엇이 삶의 의미이며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통계 여론조사법의 창시자인 [조지 갤럽]이 “어떤 사람이 가장 행복한가?”를 조사했는데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가장 불행한 사람은 가진 것은 있으나 의미 없이 밤낮으로 술집에 드나들며 물질을 마구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을 살면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돈이 많고 명예가 있고 건강하고 좋은 직장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들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 모든 것들을 다 갖고 있으면서도 불행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9세기에 세계를 지배했던 사라센 제국의 압둘 라만 3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왕국을 49년간 통치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그의 수입은 3억 달러에 달했고,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3,321명의 아름다운 왕후들을 거느렸고, 616명이나 되는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숨을 거두면서 마지막으로 “오랜 세월 동안의 영예로운 통치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정으로 행복을 누린 날은 단 14일 뿐이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분이 행복했던 날은 얼마나 되었던 것 같습니까?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과연 “내가 진정으로 행복을 누린 날은 **일 뿐이었다.”라고 말하면서 만족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아쉬워하시겠습니까?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야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앞선 압둘 라만 3세의 경우처럼 세상을 다 가진다고 해도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행복은 평범한 일상 안에서 충실할 때 매순간 저절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주님의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요?

1~9절까지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전 사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종교적으로 열심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종교와 맞지 않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교회를 잔멸 시켜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여전히 살기가 등등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려고 회당에서 대제사장의 공문을 청하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6:9절에서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대적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에까지 파견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울의 삶이 극적인 전환점이 생겼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것입니다. 3-5절 말씀입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로 비추는 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바뀝니다. 어두운 삶은 밝은 삶으로 절망적인 인생은 소망적인 인생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언제나 마음속에 찬양이 있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 하도다.

(후렴)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의 얼굴 뵙기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밝은 세상에서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두운 세상에서도 찬양하는 것입니다. 환경이 좋기 때문에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들은 어떠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늘 희망을 가지고 소망 중에 살아갑니다.

사울이 그러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서도 찬양하며 기뻐했습니다. 매를 맞고 환난을 당하는 그 상황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을 가졌습니다. 위협을 당하는 그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담대했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딤후4:6-8절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니라.”

그는 매일 후회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항상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죽음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2.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살았으며 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까?

15-16절 말씀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사명을 발견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통하여 그 사명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15-16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지 그것을 깨닫는 그 순간부터 사람은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위하여 살 때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그것을 위해 나의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까? 사도바울이 행복한 삶을 살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사명을 위해 그렇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0:24절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주님을 위해서 사는 삶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 크리소스톰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법으로 금한 기독교 복음을 증거 한다고 체포당하여 감옥에 갔을 때입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복음화하라고 이곳에 저를 파송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그는 감옥 속에서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그는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기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순교라고 했는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의 반열에 동참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크리소스톰은 사형장으로 끌려갑니다. 그러나 성 크리소스톰에게 교수형이 집행되려고 할 때 갑자기 사형 중지 령이 내렸습니다. 그때도 크리소스톰은 눈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종에게 할 일이 더 남았다는 것입니까?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것이 성도가 감사해야 할 이유입니다. 살아도, 옥에 갇혀도, 죽게 되어도 감사하는 마음, 주님을 사랑으로 분장시키시는 것입니다 사명은 사람을 헌신케 하고 그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하고, 강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합니다. 의미 있게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습니까? 삶에 의미가 있습니까? 행복하십니까? 사명을 깨닫고 생명과 열정을 바쳐 헌신하십시오, 그러면 행복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어떤 만남이 있어야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줍니까?
먼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멘토를 만나야 합니다. (10-19)

멘토(Mentor)라는 말은 어디서 유래되었는가 하면 그리스의 장군 오디세이가 트로이 전쟁에 나갈 때 어린 아들 텔레마쿠스를 “멘토”라는 믿을 만한 스승에게 맡기고 전쟁을 떠났습니다. 트로이 전쟁은 10년이나 계속되었으며 오디세이는 그 후 10년이 더 지난 후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소년 텔레마쿠스는 건장한 남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멘토의 지혜로운 가르침 덕분 이였습니다. 여기에서 멘토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멘토란 어느 정도까지 아버지의 역할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며 그를 발전시키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울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일꾼 사도바울이 있기까지 사도바울을 도와준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아나니아와 바나바라는 영적인 지도자를 만났습니다. 아나니아와 바나바는 어떤 사람입니까? 아나니아는 주님의 인도를 받는 제자였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제자였습니다. 바나바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주님을 따르는 헌신된 제자였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의 중요성을 잘았던 사람 이였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7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각자 자신에게 한 가지 물어보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내가 있도록 나를 도와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나의 삶에 영원히 남을 인상을 심어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미국의 유명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가운데서 제시 오웬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매우 가난한 흑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가 중학생 때 한번은 강당에서 찰스 해록프라고 하는 미국의 100m 달리기 대표 선수가 와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찰스 해록프는 그 앞에 앉은 청소년들에게 격려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가장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미국인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you can be a somebody!” 이 이야기를 들은 제시 오웬스는 내가 무엇인가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강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도 그 때부터 희망을 가지고 맨발로 뛰기 시작하여 올림픽에서 100m, 200m, 400m, 1000m 에서 우승하여 금메달을 네 개나 목에 걸었습니다. 그가 나중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날 자신이 있게 된 것은 그 때 찰스 해록프를 만났기 때문이다.”

다윗이 역대 왕들과 다른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곁에는 항상 말씀으로 권면 하고 책망하는 선지자가 있었고 그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왕으로 세움을 입었을 때는 사무엘이 다윗의 곁에 있었고, 왕으로서 활동할 때는 나단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도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여 영적으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의미 있는 삶이되기 위해서는 영적인 멘토를 만나야 합니다.

3. 나는 왜 사울처럼 철저히 변화된 삶을 살 수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