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 공과 2013년 3월22일
베뢰아 사람들이 말씀을 받다.
사도행전17장10절~15절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10)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이 난동을 부릴 때에, 야손을 비롯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즉시 피신시켰습니다. 그리고 밤중에 베뢰아로 보냈습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서남쪽으로 약60마일(약96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도시입니다. 바울 당시 마게도냐를 넷으로 나눌 때에 제3지역에 속하는 곳에 베뢰아가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베뢰아는 올림피안 산맥의 동쪽 자락과, 에게해에 이어지는 평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물이 풍부한 곳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로부터 베뢰아까지 걸어간 길은, 이그나시안 도로에서 벗어나 남쪽으로 데살리를 거쳐서 아가야 지역으로 가는 길입니다. 베뢰아의 현재 이름은 VERRIA이며, 인구는 약 1만 8천에서 2만 명 정도이고 그 중에 유대인은 약 2천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1. 보다 더 신사적인 베뢰아 사람들이란 말을 설명하여 봅시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베뢰아 사람들에 대해서 한 마디로 신사적이라고 평가합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11) 물론 누가나 바울이 접한 사람들은 베뢰아 시민 전체는 아닙니다. 유대인 회당에서 만난 일부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그들 중에는 유대인도 있고 헬라인도 있습니다. 누가는 이들 일부 사람들만 대하고도 베뢰아 사람들 전체의 성향을 신사적이라고 평가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이 신사적인 만큼 전도에도 상당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12) 다수의 유대인들, 그리고 높은 신분의 귀부인들과 남자들이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의 신사적인 태도에 대해서 먼저 주목해야 합니다. “신사적”이란 말은 헬라어로 “eujgenhv””인데, “좋은 출생” 이란 뜻입니다. 즉, 출신이 좋다는 뜻으로, 고상하다는 의미로도 의역되는 말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fair-minded” (NKJV), “noble character”(NIV), “open minded”(NLT)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공정한 마음, 고상한 성품, 열린 마음의 뜻입니다. “신사적”이란 단어는 원문상에 비교급(eujgenevsteroi)으로 되어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신사적이란 의미입니다. “These were more noble than those in Thessalonica,” (KJV) 감히 지역적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어떤 출신 배경에 따라 보다 더 신사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출신이란 어떤 가문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지역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집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확실히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신사적입니다.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은 불량배를 동원하여 바울과 실라를 괴롭혔지만, 베뢰아에는 그런 유대인이 없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사는 유대인이나 베뢰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혈통이 같습니다. 그런데 베뢰아 지역 사람들의 배경이 신사적이기 때문에 거기 사는 유대인들도 신사적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어떤 출신에 따라서 보다 더 신사적이 된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출신을 따지자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사는 집단이 신사적이면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도 신사적이 된다는 뜻입니다.
왜 어떤 집단은 신사적이고 어떤 집단은 천박할까? 그것은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상이나 가치관, 도덕성, 생활 습관 같은 문화적 배경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환경은 사람들의 매너, 교양, 언어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보세요. 부모가 부부싸움 하면서 소새끼 말새끼 하면서 욕하면 애들이 소꿉장난 하면서 그대로 따라 합니다. 자기 남편에게 이 무슨 “인간아!” 하면서 대들고, 아내에게 “야, 너” 하면서 막말 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왜 욕이 없으면 말이 안 되고, 험악한 말만 사용합니까? 학교 또래 집단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말이 당연한 줄 알아요. 그만큼 어떤 사람이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처한 사회적 환경도 그렇습니다. 현재 우리의 언어, 예절, 윤리, 도덕성은 과거 우리가 자랄 때에 비하면 엄청나게 천박해졌습니다. 현재 40대 이하 젊은이들은 우리 사회가 과연 얼마나 천박해 졌는지 전혀 몰라요. 왜냐하면 과거 사회를 모르기 때문에!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천박해졌을까요? 언어가 천박해지고, 행동이 천박해지고, 생각이 천박해진 때가 언제일까요? 저는 그 때를 칼라 텔레비전이 보급되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광고주가 프로그램을 좌우하게 된 상업방송 시대가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교양이 무너지고, 예절이 무너지고, 언어가 저급해졌습니다.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도덕성이 무너지고, 교실이 무너지고, 사제지간이 무너지고, 부모자식이 무너지고, 모든 인간관계가 개 등급 되었습니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세요. 어디를 보나 패턴이 똑 같습니다. 인기 프로그램이란 게 별 유익도 없는 남의 사생활 얘기 들춰보면서 희희덕거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나는 우리 애들까지 그런 프로를 보면서 시간 보내는 것이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방송 매체의 속성이 뭡니까? 남의 안 좋은 면을 들춰내고 흠잡는 일입니다. 이런 속성에 물들면 항상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고, 안 좋은 일만 들춰내고, 비판만 하는 비뚤어진 인간상이 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현대인들은 방송의 집단 최면에 걸려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세상 집단에서 빠져나와야 됩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18: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14,17-18) 그렇다고 세상 밖으로 탈출할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 내가 속한 집단에서 구성원들의 생각을 건전하게 바꾸고, 가치관을 바꾸고, 사상을 바꾸고, 삶을 바꾸도록 앞장서서 어떤 역할을 해야만 됩니다. 나는 내 자식들이 가진 사상, 가치관, 사용하는 언어, 매너, 생활 방식의 거의 모든 것이 나를 닮았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내가 아버지로 있는 가정 속에서 어떤 삶의 방식을 몸에 익혔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속한 정윤교회의 분위기, 예를 들면 우리 교인들의 신앙 모습, 생활 태도, 가치관, 예절, 봉사 자세와 같은 일반적인 모습이 나를 닮았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식으로든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인간 사회는 삶을 공유하고, 삶의 태도를 공유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속한 집단이 신사적인 집단이 되도록 일정한 역할을 감당해야만 됩니다. 내가 속한 가정을 신사적인 공동체로 바꾸세요. 내가 속한 직장을 신사적인 공동체로 바꾸세요. 내가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신사적인 사람들로 바꾸세요. 그래야만 거기 속한 모든 사람들이 신사적인 사람이 됩니다. 특히 신앙생활의 모습에서 신사적인 사람들이 되도록 역할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베뢰아 사람들처럼 내가 속한 공동체에 “신사적”이라는 별명이 붙도록 만드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간절히 받아 들였습니까?
그러면 베뢰아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신사적입니까? 오늘 공부 할 말씀에 보면 두 가지 사실을 언급합니다.
첫째로,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열린 마음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11)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영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in that they received the word with all readiness of mind, ”(KJV) “they received the message with great eagerness”(NIV) 잘 준비된 마음, 혹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수용적인 자세, 일단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가장 원하고 원하신 것은 경청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수 3:9)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욥 37:2)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시 81:8)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사 28:2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사 55: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 4:23) 너희는 제발 내 말에 경청해다오! 내 말을 좀 들어라!
요즘 사람들, 열렸다는 말, 소통이라는 말을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일수록 자기주장이 강합니다. 남의 소리를 듣지 않는 사람들이 주로 남에게 내 말 좀 들으라고 목청을 높입니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은 들으라는 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조용히 경청합니다. 특히 요즘 사람들은 다원주의 사상을 좋아합니다. 다양한 소리를 들어라! 온갖 잡소리를 다 열린 마음으로 듣습니다. 그런데 유독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귓잔등으로도 듣지 않습니다. 그 쪽 방면은 처음부터 귀를 막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슥 7:11-12)
듣지 않고 내 말만 하는 시대, 경청이 없는 시대, 도대체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시대, 말하는 사람은 많고 내 말을 들어 줄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시대, 이런 시대에 하나님 말씀에 열린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참으로 칭찬할 만 합니다. 베뢰아 교인들은 사람의 소리보다 하나님 말씀에 열린 귀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상고함
베뢰아 교인들의 신사적인 면, 두 번째는 성경 연구입니다.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11) “kaq! hJmevran ajnakrivnonte” ta;” grafa;”” 그들은 성경을 상고하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덮어놓고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감정에 휩싸여 판단력 없이 믿는 신앙이 아닙니다. 꿈을 꾸거나 무슨 귀신의 계시를 받고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황당한 경험을 믿는 믿음도 아닙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누가 말한 사설을 듣고 믿는 믿음도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철두철미하게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뜻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성경이 없으면 기독교는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특별 계시입니다. 성경은 문자로 기록된 성문법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사람답게 살아야 될 거룩하고 성결의 모든 지식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면 인생의 문제들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 해 집니다. 예수님을 믿고 내가 구원 받은 사실도 물론이지만 인생을 놓고 고민하던 모든 문제의 해답이 명쾌하고 간단하게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은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은 어떤 의도로 무슨 일을 하셨는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왜 구원받아야 하는가? 어떻게 죄인이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인간이 거주하는 지구는 어떤 곳인가? 우주의 기원은 무엇이며, 생명의 기원은 무엇인가? 장차 인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중대한 모든 질문에 대하여 성경은 간단명료한 해답을 전해줍니다. 성경은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입니다. 성경이 없으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이 없으면 자신도 알 수 없고, 세상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인간,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 성경이 말씀하는 영생, 성경이 말씀하는 부활, 성경이 말씀하는 역사의 종말, 성경이 말씀하는 재림과 심판, 성경이 말씀하는 천국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당연히 성경을 알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베뢰아 교인들의 장점은 바로 성경을 연구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 연구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요5:39) 이 구절에서 상고한다는 말을 여러 번역에 다양한 단어로 번역합니다. 파고들다(공동번역), 연구하다(새 번역), search(KJV, NASB, RSV, NLT), diligently study(NIV) 등등. 11절의 성경을 상고한다는 말은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한다는 뜻입니다.
*참고
“and examined the Scriptures every day to see if what Paul said was true.”(NIV) “and searched the scriptures daily, whether those things were so.”(KJV)
3. 내가 베뢰아 사람들처럼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요?
3가만 생각하여 발표해 봅시다.
베뢰아 교인들의 성경 연구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매일매일 일과적으로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11)
*참고
“and examined the Scriptures every day ”(NIV) “and searched the scriptures daily,”(KJV)
성경은 매일매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요 음성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레미야 24장 1-10절의 말씀을 묵상하였다고 합시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눈에 두 종류의 무화과가 다민 광주리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는 처음 익은 극히 좋은 무화과였고, 다른 하나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입니다. 이것은 두 종류의 이스라엘 백성을 비유한 것입니다. 좋은 무화과는 바빌론 포로로 잡혀갈 백성들이고, 나쁜 무화과는 본토나 애굽으로 피신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거부하는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는 사람이 좋은 자녀인 것을 깨달아야겠습니다. 그래서 내게 수로 주시는 모든 징계를 항상 달게 받자는 결심을 하여야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성경 말씀을 매일매일 묵상하면서 그 때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오늘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바울의 설교를 듣고 그 진정성을 성경으로 검증했습니다.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11) 과연 바울이 말한 것이 사실인가? 과연 성경에 있는 것을 얘기했는가?
*참고
“to see if what Paul said was true.”(NIV) “whether those things were so.”(KJV)
오늘날 소문난 설교자들이 많습니다. 케이블 TV를 통해서 하루 종일 유명 설교자들의 설교가 이어집니다. 이렇게 다양한 설교자들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모든 설교자의 설교가 과연 성경 말씀인지 아닌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설교는 넘쳐나는 데 성경 말씀이 아니면 곤란합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암8:11-13) 오랜 만에 만난 동창이 어떤 목사에게 자랑했습니다. 나도 요즘 교회에 나간다! 아 잘 했다고 칭찬을 했더니 그가 하는 말이 동창 목사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우리 교회 목사님은 고리타분한 성경 얘기를 안 해서 좋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런 얘기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설교의 진정성은 성경을 말하는 데 있습니다. 설교자가 성경을 말하고 있는가? 설교자가 지금 성경대로 얘기하고 있는가? 설교를 들으면서 무슨 인간적인 위로를 받으려고 하기 전에 하나님 음성을 그대로 듣는 훈련을 하세요. 성경대로 설교하는가? 설교를 성경으로 검증하게 된다면 최고의 영적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베뢰아 교인들의 신사적인 신앙의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베뢰아 사람들은 확실한 진리를 실생활에 적용하며 생활로 옮겨 살다보니 참으로 말씀이 곧 그들의 삶이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의 인격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기가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그런 공동체가 곧 하나님나라의 모형이 될 수 있었고 다윗시대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었던 이후 가장 철저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점을 베뢰아 공동체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고 이 말씀이과연 사람을 만들어 갈수 있는가? 를 확증하기위하여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지를 검증하면서 그것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바로 실천에 옮겨 하나님 말씀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 스스로가 지시는지를 확인한다면 언제든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될 것이고 감격 할 일들이 터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