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회 공과 2013년 2월 22일
루디아가 믿다.
사도행전16장11절~15절
1.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행로를 살펴 봅시다.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는 장면과, 유럽 최초로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전도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0절부터 유명한 “우리”란 표현이 시작됩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바울 일행에 포함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부터 바울 일행은 바울, 실라, 디모데, 누가까지 기본적으로 총 네 명이 됩니다.
먼저 바울 일행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거쳐 간 중요한 경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11-12) 이 구절에 보면 바울이 거쳐 간 네 도시가 나타납니다.
첫째는 드로아입니다. 드로아의 full name은 Alexandria Troas입니다. 드로아는 주전 4세기까지 그리스의 자유도시로 있다가,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에 로마 식민지가 된 곳으로, 아시아와 마게도니아를 연결하는 아시아쪽의 관문입니다.(20:5)
둘째는 사모드라게입니다. 사모드라게는 드로아에서 네압볼리까지 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에게해에 위치한 섬입니다. 해발 5000피트(약1500미터)에 이르는 산악으로 된 섬으로, 에게해를 항해하는 선박들의 경유지 겸 피난처입니다.
셋째는 네압볼리입니다. 네압볼리는 빌립보에서 16km 정도 거리에 위치한 빌립보의 외항입니다. 오늘날은 Kavalla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유명한 로마의 Egnatian Way(에게해와 아드리아해를 육로로 잇는 로마의 도로)가 있었습니다. 이 길은 에게해 연안의 네압볼리로부터 시작하여 서쪽 아드리아 해 연안의 아볼로니아와 드라키움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드로아에서 네압볼리까지는 약 250km 정도 되는 거리인데, 이 거리를 단 이틀에 건너간 것은 대단한 순풍을 만났다는 뜻입니다. 20장 6절에 보면 역방향으로 네압볼리에서 드로아까지 닷새가 걸렸습니다. 닷새가 걸리는 거리를 이틀에 간 것은 아주 좋은 바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길로 가기만 하면 가장 순탄한 길이 됩니다.
넷째는 빌립보입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역의 중심 도시입니다. 마게도냐는 주전 4세기 경 빌립과 알렉산더 대왕 시대의 고향입니다. 빌립보의 본래 이름은 크레니데스(작은 우물)였는데, 주전 358년 알렉산더의 부친 빌립이 점령하고 자기 이름을 따라서 빌립보라 명명 했습니다. 빌립이 이 도시를 점령한 것은 이곳에 유명한 판게우스 산의 금광이 있었고, 또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주전 168년에 빌립보는 로마의 통치 아래로 편입되었고, 주전 42년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후일 아우구스투스)가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제압한 후에는 로마의 식민지로 만들고 많은 군 출신들을 이주시켰습니다. 주전 31년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제압하고 또한 많은 이주민들을 이곳에 정착시켰습니다. 12절에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12) 여기 나오는 식민지(kolwniva)란 말은 오늘날 말하는 식민지하고는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로마의 식민지(kolwniva)는 주로 로마인들이 이민하여 사는 지역으로, 자치권을 주고 로마법을 적용하고, 군대를 주둔시켰으며, 대부분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에 언급된 이 같은 로마의 식민지는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드로아, 고린도, 돌레마이 등이 있습니다.
누가는 빌립보를 마게도냐의 첫 성이라고 합니다. 당시 마게도냐 수도는 데살로니가였고, 암비볼리는 더 큰 도시였습니다. 그러면 첫 성이란 뜻은 뭘까요? 주전167년 푸드나 전투 이후 로마 원로원은 마게도냐를 네 개의 독립된 지역으로 분할했습니다. 아마 빌립보는 그 분할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라는 뜻으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의 주관적 평가에 의해 빌립보는 마게도냐의 첫째 도시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빌립보는 누가에게 각별한 인상을 준 도시였습니다.
누가는 빌립보에서 일어난 일 중에 특별히 세 가지를 기록했습니다.
첫째는 루디아를 전도한 일입니다.(본문) 둘째는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 준 일입니다.(16:16-18) 셋째는 빌립보 감옥의 간수장을 구원한 일입니다.(16:19-34)
2. 루디아의 회심과정을 설명하여 봅시다
그러면 바울이 루디아를 전도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디서나 바울의 전도 전략은 동일합니다. 먼저 유대인에게 전도하고 나중에 이방인에게 전도하는 순서입니다. 본문에도 그런 과정이 나타납니다. 바울은 빌립보에 유대인 회당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당이 없다는 것은 유대인 남자 열 명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랍비 Halafta Ben Dosa의 가르침에 보면 어느 곳이든 유대인 남자 열 명이 살면 회당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100 명이 모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빌립보에 회당이 없는 것은 유대인 남자 열 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기도처를 찾으려고 강가로 나갔습니다. 빌립보에 인접한 Gangites라는 강입니다.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12)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13) 이 강가에 나갔다가 바울은 뜻밖의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몇몇 여자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이 없는 곳에서는 주로 강가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기도했습니다. 여기 모인 여자들은 유대인 여자들과 혹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구약성경의 하나님을 알게 된 이방 여자들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렇게 모인 여인들에게 전도했습니다.
여기서 최초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바로 루디아입니다. 루디아는 여러 면에서 첫 번째 타이틀을 가진 여인입니다. 유럽 최초의 전도의 열매입니다. 유럽 최초로 사도 바울을 영접한 사람입니다. 유럽 최초로 교회를 세운 사람입니다. 바울이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봤을 때는 남자가 손짓했는데 막상 처음 믿게 된 사람은 여자입니다. 마게도냐에서 여인이 처음 믿게 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마게도냐에서 여성의 위치는 상당했습니다. 개종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법률적으로도 부인의 요구로 한 일은 제재를 받지 않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경제 활동은 물론 개인 재산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서에 보면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비롯한 여인들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빌립보 교회에서 여성들은 많은 봉사를 했고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회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성경이 특별히 보장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빌립보 교회는 여성이 뛰어났던 교회입니다.
그러면 다시 루디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루디아(Ludiva :Lydia)란 이름은 고유명사인지, 아니면 루디아 출신 여자(the Lydian woman)란 뜻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 성 출신입니다. 두아디라는 계시록의 일곱 교회에 나오는 도시로 무시아 남부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옛 Lydia 왕국에 속했던 곳입니다. 두아디라는 알렉산더 대왕 때에 그리스의 도시가 되었다가, 주전 190년 경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카이코스와 헬머스 두 계곡 중간에 위치해 있어서 예부터 소아시아 염색 공업의 중심지였습니다. 특히 purple dye (자주 염색) 천으로 유명했습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 특산물인 자주 색 옷감을 파는 여성 사업가로 부자였습니다.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측되며, 사업을 하면서 많은 식솔을 거느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루디아가 어떻게 유대인 여자들 사이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추측한다면 루디아가 두아디라 성에 살 때에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해 들었든지 아니면 사업상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해 듣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종교적으로 두아디라는 아폴로, 아테미스, 삼바다 등의 우상 숭배지로 도덕적으로도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계 2:20-21) 그런데도 그런 곳에서 자라난 루디아가 유일하신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게 된 것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루디아의 회심 과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복음을 듣고 경청했습니다. 복음을 듣는 것은 구원의 출발입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4-15,17) 보내심, 전파함, 들음, 믿음, 말씀의 중요한 단계들로 구원은 성취됩니다. 바울은 주님의 보내심을 받았고, 복음을 전했고, 루디아가 들었고, 믿었습니다.
둘째로,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첫째가 외적이고 인간적인 구원의 과정이라면 둘째는 내적이고 신적인 구원의 역사입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14) 말씀 경청과 성령의 역사가 연결된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역사하십니다. 말씀은 성령의 역사로 심령에 전달되고 감화되고 결단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구원에 이르게 된 것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나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주님의 종 전파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나로하여금 복음에 관심을 갖고 경청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내 마음을 열고 예수님이 구주이신 것을 알게 하셨고, 믿고 결단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하신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3. 루디아가 받은 특별한 복에 대하여 설명하여 봅시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루디아가 받은 특별한 복입니다. 누구나 예수 믿고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얻지는 못하는 특별한 은총이 루디아에게 주어졌습니다. 무엇일까요?
첫째로, 온 집안이 다 믿고 세례를 받은 일입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15) 가족 구원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16:31) 사도행전에는 가족 구원을 이룬 사람들이 몇 차례 언급됩니다. 고넬료 가족(10:48), 루디아 가족(본문), 빌립보 간수장 가족(16:33), 고린도의 회당장 그리스보 가족(18:8) 등. 본문은 유아세례의 근거가 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노인에서 어린아이까지, 남자와 여자, 자유인과 노예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가 되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늘 나의 집안이 이렇게 다 구원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족 구원을 위해서, 집안, 가문의 구원을 위해서, 목표를 두고 기도하고 전도합시다.
둘째로, 즉각적인 봉사와 섬김입니다.
누구나 예수 믿는 것이 아니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누구나 다 봉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봉사하는 사람은 더 복된 사람입니다. 루디아는 믿은 즉시 봉사자가 되었습니다. 이것도 루디아가 유럽 최초로 교회 역사에 세운 신기록입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15) 신앙의 확증은 이웃을 향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내가 정말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내 집에 들어와 유숙하십시오. 인사치례가 아닙니다. 강권하여 집으로 모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유럽 최초의 교회가 빌립보에서 루디아의 집에 세워졌습니다. 성경에 보면 초대교회는 대개 개인 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마가의 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12:12)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 에베소의 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고전16:19) 라오디게아의 눔바의 집(골4:15), 골로새의 빌레몬의 집(몬2) 등이 다 개인 집에서 시작된 교회들입니다. 개인 집에서 교회가 시작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는 가족과 같은 공동체입니다. 결코 잘 짜여진 기업체가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고도의 경영 기법으로 대형 유통업체처럼 운영됩니다. 전도는 마케팅이고 지체들은 비즈니스 팀으로 움직여집니다. 직분자들은 조직의 파수자들이고 지체간의 유대 관계는 별로 없습니다. 가정과 교회가 연결된 기본 정신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루디아의 섬김에서 빌립보 교회만의 좋은 전통이 세워졌습니다. 뭘까요? 빌립보서를 보세요.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5-19) 사도를 돕고 사역자를 돕는 전통입니다. 기꺼이 헌금하는 헌금의 전통입니다. 남에게 나눠주는 “주는 교회”의 전통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지속적으로 바울의 전도 사역을 도왔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로마 감옥에 있을 때까지, 시종 사도를 돕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밀알교회도 개척 초기부터 돕는 교회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도울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주는 자는 항상 주는 복을 받습니다. 받는 자는 항상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위축되고, 소극적이 됩니다. 루디아는 비즈니스 우먼입니다. 여성 사업가입니다. 돈 벌어서 뭐 합니까? 나중에 자식들에게 주려고 하십니까? 재산 잘 못 모아 놓으면 자식들끼리 싸우고, 못 된 자식은 부모 빨리 돌아가시라고 고사 지냅니다. 루디아는 주님을 믿고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돈 버는 목적이 생겼어요. 주님 나라를 위해 쓰는 겁니다. 사업에도 목표가 없으면 허무합니다. 돈만 있으면 뭐합니까? 보람 있게 쓸 수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세상 부자들 보세요. 돈을 산더미처럼 벌어도 별 행복이 없어요. 그래서 번 돈으로 정치에 뛰어듭니다. 정치는 행복을 주나요. 진정한 행복은 돈을 모으는 데서 오지 않고, 돈을 보람 있게 쓰는 데서 옵니다. 나보다는 남을 위해 쓰는 것이 행복합니다. 남보다는 하나님을 위해 쓰는 것은 더 행복합니다. 루디아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오늘 루디아처럼 행복한 부자, 행복한 사업가가 되시기 바랍니다. 돈 벌어 쓸 곳을 찾는 행복한 부자, 행복한 봉사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