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감사 기도를 드리시고 빵을 쪼개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4)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포도주 잔을 드시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5)라고 하셨다. 오늘 우리도 성찬식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그날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동일하게 듣는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주셨던 기념의 소명을 우리에게도 분명하게 알려 주신다.
성찬식에서의 기념은 옛날에 있었던 사건을 무심코 떠올리는 것과는 그 수준과 결을 달리한다. 헬라어로 ‘아남네시스’(ἀνάμνησιϛ)인데, 이는 어렴풋한 연상이나 단순한 암기를 넘어서는 생생한 기억으로, 지금 이곳에 되살아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편 영어로 ‘기억’(remember)은 다시(re) 공동체의 일원(member)이 됨을 뜻한다. 성찬식에 참여하는 이들은 주님의 만찬 현장에 가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회복과 일치의 경험을 하게 된다. 성찬에서 나누는 빵과 포도주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희생과 사랑을 생생하게 기억하도록 돕는다. 존 웨슬리가 말한 대로 이는 은총의 매개며, 칼뱅의 표현을 따르면 주님의 영적 실존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 성찬의 의미와 방식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성찬 때마다 주님과 더불어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그분의 모습을 되새기고, 일상에서 그분을 품는 거룩한 기념(remember)은 교회들이 공감하고 동의하는 성찬에 대한 보편적 이해다.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며 기념하는 이들은 자신을 주신 주님의 지고한 사랑이 드러나는 성례전적 삶을 살아간다. 노라 갤러거(Nora Gallagher, 성공회 저술가)는 성찬을 행하는 이는 주님을 기억하는 동시에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주님과 하나 된 존재로서 그분처럼 자신을 내어 주며 살라는 뜻이다. 우리의 성찬을 진지하게 돌아보자.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생명을 내어 주신 주님의 사랑이 다시 생생한 기억으로 우리 심장에 담기고 일상에서 생명의 호흡으로 작동하는가? 혹여 아무런 감동이나 영향도 주지 못하는 형식적 의례의 답습이거나 일상과 괴리된 과거의 빛바랜 사건으로 폄하되고 있진 않은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 안덕원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생명의 삶 2019년 9월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