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에게는 형제자매가 짐이 됩니다. 이방인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전혀 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방인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는 짐을 피해 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형제자매의 짐을 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형제자매를 용납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오직 짐으로서만 참으로 형제자매이지 지배당해야 할 대상으로서가 아닙니다. 인간의 짐은 하나님 자신에게도 그토록 무거워, 그 짐 아래서 십자가를 지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 회퍼, 「신도의 공동생활」, “섬김” 중에서)
하나님이 동물들을 지으실 때에 새들은 불만이 많았답니다. 다른 동물들은 다리를 네 개나 가지고 있는데, 자기들은 두 개밖에 없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사자나 말처럼 튼튼한 근육질도 아니고, 말 그대로 ‘새 다리’였습니다. 빨리 달릴 수도 없고 뒤뚱거려야 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등 뒤에는 거추장스러운 짐이 두 개나 달려 있으니, 너무나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투덜대며 항의했지요.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등에 달린 짐을 활짝 펴서 날아보아라!” 짐이 아니라 날개였습니다. 다리가 가늘고 가벼운 것도 약점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의 다리가 크고 무겁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들만 그런 걸까요?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 신앙은 더욱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는 때로 우리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좌절합니다. 너무 버거워서 아파하고 쓰러지기도 하지요. 그러나 어쩌면 우리의 짐이 우리를 짓누르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혹여 우리를 날아오리게 하는 날개가 아닐까요?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고는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편히 쉬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편해질까요? 어떻게 해야 쉴 수 있겠습니까? 지고 있는 짐을 다 벗어버리면 될까요? 모든 짐을 주님께 맡겨버리고 훌훌 가볍게 걸어가면 될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고 있는 짐을 버리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우라고(마 11:29) 하십니다. 멍에는 무엇입니까? 멍에는 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짐을 잘 지게 하는 도구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그 멍에를 통해서 함께 짐을 지자고 하십니다. 함께 지는 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는 짐은 편하고 가볍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바울은 서로 짐을 져주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함께 짐을 질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게 됩니다.(갈 6:2) 그리스도인은 함께 사랑의 짐을 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함께 짐을 질 때,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의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요 15:11)
- 본회퍼와 함께 기다리는 성탄 (대한기독교서회)